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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스텝 저자 박요철입니다
Dec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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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빡빡이 셰프가 기본 메뉴를 제외하곤 모두 빼자고 히스테리를 부렸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못하겠다 했다더군요. 심지어 관두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화가 난 저는 그날 점심도 같이 먹지 않고 씩씩대며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종의 식당일 멘토인 옆집 부대찌개집을 찾아갔습니다. 한때 제가 점심 알바를 하던 곳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마음이 풀린 저는 셰프와 논의 끝에 기본 8개를 제외하곤 다른 메뉴를 모두 빼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짬뽕 순두부가 주 메뉴인 이 집에서 여타의 메뉴를 제외하니 오히려 회전율이 높아졌습니다. 기본 짬뽕에 계란이나 만두를 더하는 옵션을 제외하곤 셰프가 그렇게도 아끼던 연탄 불고기 같은 사이드 메뉴를 모두 빼버렸지만 손님들은 금방 적응합니다. 사실 이런 사이드 메뉴는 다른 가게에서도 취급하는 음식들입니다. 손님들은 매일 순두부 먹기 뭐해서 한 두 번 시킨 것이지 이 때문에 가게에 온건 아니었던 겁니다. 빡빡이 셰프가 조용히 묻습니다. 혹시 연탄 불고기 찾던 손님은 안계시던가요? 제가 잘라 말합니다. 아뇨.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사이드 메뉴는 빡빡이 셰프가 장사가 잘 안될 때 하나 둘씩 늘렸던 메뉴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먹을 쥔 원숭이가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하는 것처럼 욕심과 미련과 불안을 놓치 못했던 것이죠. 하지만 T인 저는 F인 셰프의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멘토인 부대찌개 사장님의 조언으로 결국엔 의도치 않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겁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부가 메뉴를 뺐음에도 매출은 줄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말 식당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욕심을 낸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내려놓을 때 잘 되는 일도 생깁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저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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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식당을 홀 매니저로 일한지 어느 새 반년이 되어갑니다. 여름을 앞둔 상가 식당은 그야말로 초비상, 새로운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매출이 고꾸라지고 있어 아우성입니다. 그럼에도 저희 가게는 월매출 3200, 평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식당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여름 휴가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저는 식당의 청결, 직원의 서비스, 메뉴의 옵션 구성 등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손님들이 가장 바라는 바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건 바로 빨리 주문하고, 빨리 먹고, 빨리 나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이 가게는 유독 저녁 시간 혼밥 손님이 많았습니다. 결국 식당은 손님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친한 식당 사장님들은 목이 빠져라 손님을 기다리면서도 변화를 꾀하지 않습니다. 2,3년 식당 운영하다보면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늘 하던대로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방장은 곤조를 부리고 홀 인원들은 수시로 식당을 뛰쳐나갑니다. 간절함은 있지만 변화는 없는 식당, 그래서 이런 곳은 여름날의 나뭇가지처럼 바싹 바싹 말라갑니다.
우리 식당과 같은 라인에 있는 식당들 중에는 순대국밥, 부대찌개, 중국집, 진된장 등 직장인들에게 점심 메뉴를 제공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식당 라인의 가장 구석진 곳, 잘 보이지도 않아 임대료가 절반 밖에 하지 않는 이 식당이 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맛도 가격도 아닌 혼자 부담없이 마음 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속도'였습니다.
식당 운영은 결국 사람 장사 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공부해야 합니다. 파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사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철저히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직장 다닐 무렵 식당을 고르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만 지나면 인근의 맛있는 식당 메뉴는 섭렵하기 마련이거든요. 반 년만 지나도 먹을게 없어서 근처 대기업 구내 식당을 찾곤 했습니다. 적어도 그곳은 매일 다른 메뉴를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손님들에게 한 가게가 내밀 수 있는 선택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메뉴를 추가하고 옵션을 늘려도 금방 물리게 마련인게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입니다. 그러나 저처럼 점심은 우르르 몰려가고 저녁 만큼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혼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일에 지쳤다면 더욱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럴 때면 혼자 마음 편하게, 여유롭게 한 끼의 저녁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점을 파고 들었고 그들에게 핸드폰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거치대와 계란, 튀김 등 몇 가지 옵션 메뉴를 제공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치 보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손님들, 즉 사람의 마음을 고민하고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꾸준한 매출은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