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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새를 비추는 다정한 큐레이션, 시시호시

브랜드의 홍수 시대, 우리는 물건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거대한 백화점의 진열대는 화려하지만, 정작 나의 지극히 사적인 일상에 딱 맞는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선택의 피로' 시대에 '시시호시(SISIHOSI)'는 스몰 브랜드의 문법을 차용한 대형 유통의 영리한 변신이자, 큐레이션의 힘이 어떻게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롯데백화점이 런칭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시시호시는 마치 동네 골목의 작은 상점처럼 세밀한 감도와 다정한 시선으로 고객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이들의 슬로건처럼, 시시호시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순간으로 바꾸는 '일상의 마법'을 설계한다.


이름이 주는 온도: "시시때때로 좋은 날"


브랜드 네임 '시시호시(時時好時)'는 "때때로 좋은 시간" 혹은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물리적 정의를 넘어, 고객에게 어떤 '시간'을 선물할 것인가에 대한 브랜드의 약속이다. 대형 유통사가 운영하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시시호시가 스몰 브랜드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 '이름의 온도'에 있다.


이들은 거창한 럭셔리나 트렌드를 쫓기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사소한 순간들에 주목한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차 한 잔, 정갈하게 차려낸 점심 한 끼, 잠들기 전 일기를 쓰는 시간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장면들을 브랜딩의 소재로 삼는다. 스몰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공감'에 있다. 시시호시는 대기업의 인프라를 가졌으되, 언어와 감성만큼은 철저히 개인의 눈높이에 맞춤으로써 고객으로 하여금 "이곳은 나를 위한 물건을 골라주는 다정한 이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관점의 큐레이션: 제품이 아닌 '장면'을 진열하다


시시호시의 매장은 여타 편집숍과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카테고리(식품, 문구, 리빙 등)별로 물건을 나누기보다 '라이프스타일의 장면'별로 물건을 묶어낸다. 예를 들어 '완벽한 휴식을 위한 도구들'이라는 테마 아래 향초와 책, 그리고 편안한 양말을 함께 배치하는 식이다.


이러한 큐레이션은 고객에게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다.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매장에 들어선 고객도, 시시호시가 정성껏 꾸려놓은 장면들을 보며 "나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스몰 브랜드가 대중과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물건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쓰이는 '맥락'을 제안하는 것이다. 시시호시는 수천 개의 브랜드 중 자신들만의 엄격한 기준(감도, 진정성, 스토리)으로 골라낸 물건들을 통해, 고객의 취향을 대신 큐레이션 해주는 '안목의 대행자' 역할을 자처한다.


로컬과 상생하는 플랫폼: 작은 것들의 위대함을 응원하다


시시호시가 스몰 브랜드의 관점에서 훌륭한 모델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전국의 숨겨진 '강소 브랜드'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장인 정신이 깃든 로컬의 먹거리,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소품 등을 적극적으로 매장 전면에 배치한다.


이는 브랜드에 '진정성'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부여한다. 대형 유통사가 자사의 PB 상품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작은 브랜드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서사를 고객에게 전달할 때 브랜드의 신뢰도는 수직 상승한다. 소비자들은 시시호시에서 물건을 사며 "나는 좋은 안목을 가진 생산자를 후원하고 있다"는 가치 소비의 만족감을 느낀다. 작은 브랜드들의 합이 모여 시시호시라는 거대한 '취향의 숲'을 이루는 구조, 이것이 시시호시가 단순한 상점을 넘어 하나의 커뮤니티적 성격을 띠게 된 비결이다.


기프트 브랜딩: 관계를 잇는 정성스러운 매개체


시시호시의 강력한 경쟁력 중 하나는 '선물'에 특화된 브랜딩이다. 이들은 선물을 고르는 고민부터 포장하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정성스러운 의식(Ritual)으로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날을 선물한다"는 명확한 목적 아래 구성된 기프트 세트와 시시호시 특유의 정갈한 패키징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스몰 브랜드에게 선물하기 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선물은 브랜드의 가치가 제3자에게 전달되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시시호시는 계절마다, 혹은 특별한 기념일마다 일상의 테마를 담은 기프트 큐레이션을 선보이며 "선물할 일이 생기면 시시호시에 가야지"라는 공식을 고객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물건에 정성을 담아 관계를 잇는 이들의 방식은,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현대 유통 환경에서 잊혔던 '마음의 가치'를 복원해냈다.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발견의 힘


시시호시의 성공은 우리에게 브랜딩의 미래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브랜드는 이제 물건의 공급자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스몰 브랜드의 섬세한 감각이 결합된 시시호시는, 도시인의 삭막한 일상 속에 작은 쉼표와 같은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시시호시의 매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단순히 쇼핑을 하는 행위를 넘어, 내 삶의 구석구석을 어떻게 더 아름답고 다정하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감의 시간이다. 작지만 빛나는 물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며, 우리는 비로소 '나다운 일상'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시시호시의 진심은, 오늘도 전국의 골목과 백화점 한구석에서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향기롭게 물들이고 있다. 결국 가장 위대한 브랜딩은 거창한 혁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평범한 오늘을 조금 더 애틋하게 여기게 만드는 다정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시시호시는 묵묵히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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