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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뮤지컬 배우, 전호준을 아시나요?

뮤지컬 초대를 받았다. 들어는 보았으나 낯선 공연이었다. 다른 사람의 초대였다면 갔을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출연하는 배우로부터의 초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마음을 열고 보아 달라는 배우의 부탁 덕분에 독한 마음을 품었다. 아무리 기괴하고, 아무리 관능적이고, 아무리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꼭 가고 싶었다. 하루쯤은 편견을 내려놓고 즐겨보자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겐 그리 야하지도, 괴기스럽지도, 엽기스럽지도 않은 공연이었다. 신나고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노래로 극의 진행이 주로 이뤄지다보니 대사 전달이 어렵긴 했다. 배경 지식이 약하다보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 즐기는덴 문제 없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마음을 울리는 곡들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춤까지는 아니어도 몸은 흔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즐겁고도 행복한 공연에도 불구하고...


나를 초대한 배우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한 마디 대사도 없었다. 오직 배경처럼 춤만 추었다. 가끔씩 생각이 나 무대 위를 샅샅히 훑어 그의 얼굴을 찾았다. 내가 보기엔 분명 배우들 중 가장 잘 생겼는데, 몸도 좋은데, 평소에 만났던 그라면 노래도 잘 할텐데. 하지만 그는 끝내 단 한 번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했다. 애초에 배역 자체가 그랬을 것이다. 문득 회사를 다닐 때의 내가 생각났다. 나 역시 15년 이상을 일해왔지만 일의 결과로 주목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병풍처럼 서 있을 때가 훨씬 많았다. 출연 자체가 목적인 배우처럼 출근 자체가 존재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공연 중간 쉬는 시간에 그가 우리를 불렀다. 게이트 3번의 어두운 공간에서 그와 사진을 찍었다. 우려와 달리 그는 당당했다. 분장과 목소리만으로도 배우의 포스가 넘쳐 흘렀다. 그제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직접 만난 그는 뮤지컬 '록키 호러 쇼'의 배우이다. 이름은 전호준이다. 나는 그를 약 1년 전 독서모임에서 직접 만났다.



나의 강연을 보러 와 준 그가 왠지 낯설었다. 뮤지컬 배우가 독서 모임이라니. 그것도 무명 작가의 강연이라니. 그는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잘 생겼고, 멋있었고, 그래서 흥미로웠다. 그후로도 그와 짧은 만남은 계속되었다.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그가 출연한 '시카고' 공연을 찾겠다고 허언만 남기고 결국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마음이 계속 갔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들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기타를 친다. 예고에 입학했다. 누가 봐도 험난한 길임을 알기에 이 배우를 잊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가는 길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노력이 범상치 않았다. 존경스러웠다. 그를 아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이 배우는 흔쾌히 아들을 만나주겠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서 뮤지컬 초대를 받은 것이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공연을 즐겼다. 그러나 그는 끝내 노래하지 않았다. 존재감 없던 직장에서의 내 모습과 아들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길이 교차한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안쓰러움만 남았다면, 결코 이 글을 쓰려고 마음 먹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무대 위의 배우라고 가정해보자. 그 무대에서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인생이라는 큰 바다에서 대부분 조연이다. 1%의 성공에 가려진 99%의 루저로 살아간다. 그러니 그가 노래 한 마디, 대사 한 마디 없었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주인공은 언제나 소수여야 하니까. 하지만 그는 달랐다. 적어도 직장 생활을 하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함께 독서 모임을 하던 이들을 다른 모임에서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뮤지컬과 일반인들을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여러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배우라는 이름보다 '호작가'라고 부른다. 나 역시 영문도 모르고 오랫동안 그를 그렇게 불렀다. 글 쓰는 뮤지컬 배우, 삶을 성찰할 줄 아는 그가 꿈꾸는 삶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뮤지컬 장르를 알리는 배우겸 작가로 사는 삶이다. 일종의 브릿지인 셈이다. 그렇게 그를 알게 될 수도록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응원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업에 여전히 충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다. 공연장을 찾은 우리를 반긴 그의 모습은 그래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목표는 단순히 부와 인기를 얻으려는 보통의 배우와는 달랐다. 남들이 쉴 시간에, 남들이 놀 시간에, 다른 배우들의 자신의 인기를 혹이라도 즐길 시간에,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기다운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사 없는 그의 공연을 보고도 안쓰럽지 않았다. 되려 존경심이 일었다. 목적을 잃고 부유하던 15년의 내 직장생활을 반성했다. 언젠가 그가 범접하기 힘든 대배우가 된다 하더라도 다른 어떤 배우들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적어도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팬을 한 명 얻은 셈이었다. 표 한 장의 선심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1년 이상 그를 알음알음 알아온 진정성의 결과였다. 그가 무대에서 빛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적어도 그는 내게만큼은 독특하고도 매력 있는 뮤지컬 배우로 남았다. 나만 알고 있는, 나만 알고 싶은 작지만 강력한 브랜드로 남은 셈이다.


오랫동안 브랜드를 공부했다. 고민했다. 글을 썼다. 그 와중에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알아가고 있다. 나의 변변찮은 재주로 그들을 빛나게 만드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게 됐다. 그런 나에게 뮤지컬 배우 전호준은 '슈퍼 노멀(Super Normal)'이다. 평범한 배우지만 비범한 작가이다. 그가 가진 꿈은 그 어떤 유명 배우보다도 크고 밝게 빛날 것이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지금 빛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수많은 빛나는 별들은 이미 수백만 년 전에 사라져 없어진 죽은 별들의 빛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살아 있는 별이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진짜 스타이다. 그런 그를 먼저 알아본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뮤지컬의 '뮤'자도 모르는 내가 그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의 진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 '전호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creatju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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