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학교에 무사히 적응했다. 남편은 운영 중이던 유튜브 투자 채널 외에도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채널을 하나 더 개설했다. 작년에 이어 아이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재능기부 English Play Plus (E.P.P)도 여전히 순항 중이다. 3학년이 된 올 3월부터 영어 외에도 중국어와 프랑스어 수업을 추가로 시작했다. 다섯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즐겁게 외국어를 배워가고, 수업료 대신 아이들 계좌에 들어간 미국 주식들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남편은 새로 시작한 외국어 수업에 깊게 몰두하며, 본인의 새로운 직업이라도 찾은 듯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나는 뭐 하고 있지?
남편의 조력자이자, 아내와 엄마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그림자 같은 삶을 살았다. 그것이 마치 나만의 막중한 업무라도 되는 양 청소와 요리, 가사를 한다. 매일 루틴한 삶, 허리 위생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
아래는 나의 하루 일과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를 정돈하고, 소금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들과 남편을 깨우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남편과 아들의 아침을 먹이고,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며 온 집안 청소를 한다. 해안도로를 산책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고, 다시 점심을 준비하고, 남편의 유튜브 촬영과 간단한 썸네일 제작을 돕고, 하교한 아이 간식을 준비하고, E.P.P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안방 침대 위에 누워 아이들 수업 소리를 엿듣거나, 외출해서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해안도로를 산책한다. E.P.P 100분 수업 끝날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와 저녁준비 하고 식사 뒤, 아이의 숙제와 매일 공부를 봐준다. 아이를 재우고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떨어진 생필품과 식료품을 주문하기도 하고 가끔은 와인 한 잔씩 할 때도 있다.
도심 속 직장인들, 워킹맘의 바쁜 삶과 비교하면 더없이 느슨하고 쉼표가 어울리는 삶이지만, 나의 모든 일상은 아이와 남편에게 집중되어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산책 코스가 아파트 산책로가 아니라 제주 해안도로라는 것, 거실 통창으로 제주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는 것.
바쁘고 쫓기듯 살던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른 은퇴를 꿈꿨고, 늘 바랬던 세계여행을 다녀왔으며, 늘 선망하던 제주에 정착했다. 말 그대로 꿈꾸던 삶이 이루어졌다. 남편과 나는 40대에 이른 은퇴를 할 수 있었고, 나는 여행작가로, 남편은 투자 유튜버로 작지만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며 즐겁게 살았다. 세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타며 해안도로를 달릴 때면 온몸에 충만함으로 차올랐다. 봄이면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고, 오름에 오르고, 바다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며 여행하는 듯 살았다. 그렇게 제주살이 3년 차가 되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금융자산 덕분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백수다. 한 때는 백수가 돼서 놀고먹는 게 꿈이었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처럼 살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의 꿈 아니겠는가. 시간을 자의에 의해 쓸 수 있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믿었다.
출산을 위해 14년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직장을 그만둔 다음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서 벗어나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카페와 서점을 돌아다니며, 거리를 걸으며 그저 행복했다. 꿈만 같았던 시절도 잠시, 출산 후 심각한 산후우울증으로 아이 50일부터 프리랜서로 일을 조금씩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웃었다. 나란 인간은 돈 벌며 일해야 즐거운 사람이었다. 통장에 꽂히는 돈이 활력소였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 워킹맘의 삶을 살았지만, Covid를 겪으며 자연스레 업무를 중단해야 했고, 가정보육하는 과정에서 허리 디스크가 두 번 터졌다. Covid와 허리통증이 좋아졌을 무렵, 아이를 데리고 500일 세계여행을 떠났다.
제주에 정착한 후에도 겨울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했고, 여행기를 썼고, 즐거웠다. 브런치와 블로그가 아닌 여행 매거진에 글을 송고하며, 돈을 벌었다. 돌아보면 '여행작가 홍어른'이라는 타이틀에 심취했던 게 아닐까?
여행의 소재가 떨어진 지금 나는 백수다.
허리 디스크가 자주 재발하기에, 오래 앉아서 하는 일을 하기 힘들다. 매거진에 여행 글을 연재한 뒤로, 브런치와 블로그에 새 글이 멈췄다. 다른 글을 쓸 만큼 허리의 여력이 없었다. 그저 허리 때문이었을까? 내 마음의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당근 알바를 뒤져본다. 집 근처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에, 소일거리라도 해보려 했지만, 남편의 만류에 이내 접었다. 소액을 벌기 위해, 잃는 게 더 크다고 했다. 아마도 내 허리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가슴 뛰는 일을 찾으라고 했다. 가슴 뛰는 일이란 대체 뭘까?
요즘은 혼자 걷는 시간이 더 많다. 남편은 E.P.P를 새로 시작하며, 하루의 대여섯 시간을 E.P.P 준비에 몰두한다. 나와 함께 하던 시간도 많이 줄었다. 늘 끊이지 않던 대화도, 산책도 줄었다. 슬프게도 아빠로서의 역할도 현저하게 줄었다. E.P.P 속 Uncle Cho의 역할에 완전히 심취한 듯하다. 그의 몰입을 기꺼이 응원하고 싶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 서운한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더구나 몰두하는 일 하나 없는 백수 처지가 되니, 나 자신이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브런치 구독자이자, 스레드 이웃이자 동네 이웃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내게 왜 브런치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에게 나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면서도 내심 부끄러웠다. 올해부터는 꼭 다시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내 이야기를 글로 쓴다.
2023년 11월, 제주 표선에 입도하며 슬기로운 제주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이 뛰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며 찾아가려 한다. 다시 슬기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