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낭만? 직접 살아보니 이렇습니다.

제주 입도 3년 차가 느낀 진짜 제주살이 이야기.

by 홍어른

도시의 바쁜 삶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제주살이를 꿈꾼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제주에 3년 살아보니 알게 됐다.

이곳은 여행지와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제주를 꼽는다.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 뭉게구름과 무지개, 붉게 물드는 노을.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 자체로 그림이 되는 곳. 봄이면 유채꽃, 여름이면 수국, 가을이면 억새풀, 겨울에는 동백꽃.. 사시사철 언제나 꽃이 피는 아름다운 섬, 제주.


짬을 내어 제주 여행을 올 때면 맑은 공기에 물 맛마저 달콤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쉽게 상상한다.

제주에서의 삶은 분명 느긋하고 여유로울 거라고.








막상 살아보면 제주는 생각보다 '없는 것'이 많은 곳이다.

백화점도 없고, 대형 쇼핑몰도 없다.

규모 있는 서점도 드물고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대형마트도 없다.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지금 당장'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택배는 기본 배송비에 추가 요금이 붙어 6,000원.

육지에선 당일 배송도 가능한 로켓 배송은 이틀, 일반 배송은 3일이 걸린다.

도시에서 당연했던 속도가 제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쿠우쿠우같은 초밥 뷔페도 없다.

그래도 최근에는 서귀포에 버거킹, 서브웨이가 생겼다.

옷 쇼핑은 유니클로가 거의 책임지고 있다.




제습기는 내 친구

제주는 섬이다. 육지의 장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습하다.

특히 내가 사는 서귀포는 제주시보다 습도가 더 높다.

한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 만두 찜솥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제습기나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아침에 눈을 뜨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끈적하게 달라붙는 감촉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습도는 혼자 오지 않는다.

불쾌한 친구 '곰팡이'를 데리고 온다.

곰팡이가 자라나는 속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여름이면 실내 습도 90%를 훌쩍 넘고, 해안가 마을에서는 97%까지 올라가는 날도 흔하다.

곰팡이는 '생긴다'가 아니라 '번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며칠만 신경 쓰지 않으면 화장실과 주방 곳곳에 곰팡이가 번져있다. 서울에서 겨울마다 쓰던 가습기는 제주에 온 지 3년째, 한 번도 켜본 적이 없다.




자연도감 그대로의 삶

제주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자연과 함께' 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는 3cm가 넘고 가끔 눈이 마주친다.

욕실에서 손바닥만 한 거미를 마주친 날, 외마디 비명이 자동으로 나온다. 이불속에서 지네를 발견하는 일도 있고, 돌담 사이로 지나가는 뱀과 마주치는 일도 있다.

타운하우스나 주택에 살면 늘 마주하는 일이다.

자연친화적인 삶이라는 말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 3년 전 서귀포 남원에서 단독주택 한 달 살기 하며 온몸으로 체득한 덕분에, 제주 입도 시 깨끗하게 관리된 공동주택으로 집을 구했다. 다행히 현재는 거미와 지네를 피해서 살고 있다. 돌담길을 걷다가 지네와 뱀을 왕왕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에 살고 있다.

그리고 제주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불편한 점은 분명 많다. 습도는 힘들고, 벌레는 여전히 무섭다. 배송은 느리고, 선택지는 적다.

그럼에도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다.


창문을 열어두고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분해지는 날.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충만함이 차오른다.

그런 날들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제주살이는 낭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도 아니다.

조금 불편하고,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삶.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름다운 제주에 살고 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