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친 하루를 보낸 이에게 '오늘 하루는 이만 마감하고 쉬는 게 어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인생 자체에 지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너의 인생을 이만 마감하고 쉬는 게 어때?'라고는 말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저게 대답이 필요한 질문이었나?
대답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던, 아니 질문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던 질문은 내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하루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살아야 해
태어났으니 살아야지
너 없이 못 살아
같이 살자
'같이 살자'는 말은 2015년 동생이 자기 방 천장에 넥타이를 묶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의자 위에 올라선 동생의 두 다리를 잡고 울고 불면서 뜯어말리며 내가 했던 말이다. '너 없이 못 살아'는 엄마가 동생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 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동생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같이 살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나와 엄마의 입장에서 한 말이었고, 동생의 입장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해주지 못했다.
'나 너무 지쳤어. 나 좀 보내줘'
동생은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후 동생은 몇 년 더 살았다. 그리고 8년 후 혼자 있던 어느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
동생은 이후로도 계속 지쳐있었던거였구나. 난 그걸 놓쳤구나.
내가 다시 동생을 막을 수 있었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줬을까 생각해봤다. 지쳤어도 살기 싫어도 죽고 싶어도 살아야 하는 이유.
대답을 찾지 못했다.
동생의 장례식이 끝나고 세상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똑같이 잘 굴러가고 있다. 나와 엄마는 이제 동생이 떠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같이 죽은 것 같다. 내 삶의 의미 중 큰 부분이 동생이었는데, 내가 열심히 잘 살고 싶었던 이유 중에 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이 죽고 나니 비어버린 그 공백은 이제 메워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몸이 계속 아프고, 마음은 계속 슬픈 나날을 보내며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의 한가운데에 서서 무엇도 하고 싶지 않고 무엇도 해지지 않는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힘든데 왜 살아야 하는 거지?
살기 싫어서 죽고 싶었던 동생에게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었더라면, 지금 당장 전화를 걸면 늘 하던 것처럼 '어 누나야'라고 하며 전화를 받던 동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상상을 수없이 한다. 만약에 내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동생이 살 수 있었을까.
동생의 흔적을 거꾸로 짚어가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동생의 재정상태와 살림 상태, 어떻게 입고 먹고 자고 다녔고 일했는지, 주변 사람들, 동생의 마음 상태와 같은 것들. 누나로서 가족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들이면서 본인이 감추려고 하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등.
내가 뭔가 하지 않아서,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을 해서 동생이 혼자 그렇게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힘들 때 먼저 손 내밀어주지 못하고 외롭게 가게 한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가정이 있으니 힘내야 한다고 강해져야 한다고 선의의 위로를 건네지만 그 말들에 불쾌감이 밀려온다. 왜 내가 힘을 내야 하지? 어떻게 힘이 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 상황을 경험하지 못해서,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한다. 그중 최악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다. 나도 이런 일을 겪기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마음이니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의 우울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쓰기로 했다. 예전부터 써오던 일기장이 있는데 3개월 분량의 다이어리를 추가로 구입했다. 거기에다가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휘갈기고 있다. 누구도 보지 않을 비밀의 공간이기에 하고 싶은 말들을 원 없이 풀어놓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졌다.
이 공간은 누군가가 보는 공간인데도 지금 나의 가장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래서 몇 번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런 걸 써도 되나 싶어서 다 지웠다가, 이 부분은 좀 그렇지 않나 싶어서 일부분을 지웠다가...
오락가락 의식의 흐름대로 휘갈기는 글이지만 그래도 쓰는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내가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그리고 찾고 싶어 하는 그 답이 단 한 사람이라도 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힘든 누군가에게 살고 싶다는 마음의 가느다란 한 줄기 빛, 빛은 거창하다 그냥 바늘구멍처럼 작아도 좋으니 어떤 가능성 비슷한 무엇이라도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이다. 간절한 마음.
나는 내 동생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내 동생, 하나뿐인 사랑하는 내 동생을 잃었기에 다시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외로움에 홀로 두고 놓치고 싶지 않다.
한 번 자살시도를 한 사람은 다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주는 모습에 가려 동생의 진심을 헤아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잘 지낸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믿고 싶은 것만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동생이 또다시 그렇게 죽고 싶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예전처럼 똑같이 '같이 살자'라고 했을까. '너 없이 못 살아'라고 했을까. 동생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와서 서 아무리 수천 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을 해본들 이제 동생은 세상에 없고, 그 모든 경우의 수들도 실현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공허한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동생은 떠났어도 많은 후회와 죄책감 속을 거니는 매일을 살다 보니 내 상상 속 동생의 마지막 밤에 죽으려고 하는 동생을 붙잡는 장면에서 그저 '같이 살자'고만 말하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
그 말은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의미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사라져 버린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