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성필 Dec 24. 2021

부부의 대화법 : 여보, 내 얘기 들었어요?

 100세 인생 시대, 50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_ E.06

1. "여보, 내 얘기 들었어요?"와 "여보, 우리 얘기 좀 해요."는 아마도 40~50대 대한민국의 결혼한 남성들이 배우자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꽤 오랜 세월 동안 자주 들어왔던 말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 나이 쉰 살 즈음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덕분으로 딱 두 가지를 바꿨더니 그 이후론 거의 들은 적이 없다. 그 딱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히겠다.        

  

2. 돌이켜 생각해봐도 참 이해가 되질 않는다. 몇 시간씩 길게 얘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고작 십 여 분 남짓한 얘긴데 뭐가 그리 바쁘고 피곤하다고 짬짬이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했고,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을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또 어떠했던가. 거의 대부분의 대답이 이렇게 끝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 그래. 당신이 알아서 해."     


'얘기 좀 하자'라고 말하면 선뜻 대화에 응한 경우보다는 '어, 얘기해봐'라고 마지못한 반응을 보이거나,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하며 못마땅한 방어자세를 취한 적이 더 많다. 아무래도 대화를 하자고 한쪽에서는 무언가 벼르고 있거나 뜸 들이지 않고선 꺼내기 쉽지 않은 얘기를 시작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평소에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나눈다면 '얘기 좀 하자'는 말이 필요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남녀 구분 없이 대한민국 직장인 상당수가 퇴근 후 집에서 배우자 간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아, 물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바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평소 서로 대화를 충분히 많이 나누는 부부들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다(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3. 주변에 배우자와 대화가 잘 안 된다고 답답해하는 부부들이 꽤 많다. 몇 해 전까지는 솔직히 나도 대화가 잘 된다는 느낌이 든 적이 많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보고 들은, 그리고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가 잘 안 된다고 느끼게 되는 몇 가지 원인을 정리해본다.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꼭 그 이야기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때론 기쁜 마음으로 때론 푸념 삼아 털어놓은 말인데 남편은 '남자'의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 탓인지 반드시 그 말에 대해 무언가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기를 쓰고 덤빈다. 실제 해결 능력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또 다른 두 가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키운다.  


하나는, 이 세상 어떤 남편도 아내가 이야기한 것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속 시원하게 제시할 순 없다. 슈퍼맨도 그렇게 할 순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답을 할 수 없는 경우엔 버럭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라고. 아내는 정말 황당할 것이다.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해달라고 했나? 그냥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왜 화를 내지? 앞으로는 말을 꺼내지를 말아야지' 하면서... 


또 하나는, '이렇게 저렇게 해봐'라면서 아내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남편이 일방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경우다. 아내 생각에는 남편이 제시한 방법이 전혀 마땅치가 않고 실효성이 낮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제대로 상의하는 과정도 없이 이게 정답이란 듯 신속하게 한마디 던지고는 휙 돌아서버린다. 이 경우에도 아내가 황당해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이걸 지금 해결방안이라고 말한 거야? 내가 아예 의논이란 걸 하지를 말아야지' 하면서...  


또한, 남편은 아내가 오랫동안 꾹 참아왔던 불만을 얘기할 때 모든 말이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들려서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내거나 말없이 자리를 피한다. 아내는 남편의 적절한 위로를 기대하고 꾹 참아왔던 말을 했는데 남편은 또 그 이야기냐고 핀잔을 준다. 이런 경우의 대화는 서로에게 위안은커녕 더욱 속을 상하게 만드는 독이 된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얘기를 꺼내고 싶다가도 꾹 참는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고 대화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4.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 내부의 사람들과, 또는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는 이해관계자나 고객들과 대화를 나눌 때 항상 대화가 매끄럽게 잘 되기만 했던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시기와 방법, 그리고 장소에 대한 고민까지도 한다. 마찬가지다. 배우자와 대화를 할 때에도 시기, 방법, 장소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 아직 50년 남은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도록 해보자. 


먼저 대화의 시기에 대한 얘기를 하면, 배우자가 화가 나 있거나 또는 기분이 나쁜 때를 피해야 한다. 피곤해 보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귀담아듣는 것도 맞대응을 하는 것도 힘들다. 


성가시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화하기 좋은 시기를 만들어야 한다. 배우자가 피곤해 보이면 다음 기회를 엿보는 지혜가 필요하고, 내가 피곤할 경우에도 배우자가 기분 상하지 않게 잘 얘기해야 한다. 특히 대화의 주제가 배우자와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야 할 거리에 해당된다면 더욱 시기의 고려가 중요하다. 대화의 시기만 잘 선택해도 부부간의 대화가 잘 될 가능성이 한껏 커진다.  


다음으로 대화의 방법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대화의 기술이고 또 하나는 경청의 기술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같다. 잘 들을 수 있어야 잘 말할 수 있다. 배우자의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고, 비난과 비판을 피하면서도 자기표현을 통해 배우자가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대화의 기술이자 경청의 기술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것'은 자발적, 적극적 소통이고 '듣는 것'은 소극적 소통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듣는 것 또한 자발적, 적극적 소통의 한 축이다. 듣는 사람의 태도와 표정은 말하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읽힌다. 배우자가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되면 전보다 자신의 감정을 더욱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고 대화가 술술 잘 풀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화의 장소에 대한 얘기를 하면, 분위기 좋은 카페나 로맨틱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하지도 못하는 대화를 그마저도 늘 집에서, 그것도 같은 장소, 같은 자세로 한다. 


그러다 보면 늘 하던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대화가 잘 안 될 개연성이 크다. 집 앞 공원에 나가서 걸으면서 대화도 해보고, 차를 몰고 드라이브하면서 대화도 해보고, 비록 집에서지만 커피나 맥주 한잔 마시면서 대화하는 등 한 번씩 대화의 분위기를 바꿔보자. 잘 되진 않지만 나도 그렇게 하려고 꾸준히 노력 중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참고 가슴속에 모아놓으면 시나브로 덩어리가 점점 커지게 되고 쉽게 꺼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면 사전에 '여보, 얘기 좀 해요'가 필요해지고, 대화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고 대개의 경우 효과적인 대화가 힘들어진다. 


부부간의 대화에 많은 공을 들이려 하다 보면 아무래도 서로 실망하고 상처받는 경우가 더 생기기 마련이다. 모아두지 말고 그냥 그때그때 얘기하자. 최소한의 시기, 방법, 장소만 고려해서 그냥 툭 얘기하자. 그러다 또 한바탕(?) 하면 어떠한가. 국지전 전투로 끝날 일을 세계대전급 전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더 지혜로운 행동이다.


5.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 스스로 아내와의 대화에서 늘 염두에 두고 노력하고 있는 딱 두 가지를 소개하겠다. 첫 번째, 아내와 대화를 할 때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멈추고, 몸의 방향을 아내 쪽으로 돌려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한다. 그렇게만 하면 경청의 전제 조건을 최소한 90%는 갖춘 것이다. 경청은 진심으로 진심을 끌어내는 여정이다. 경청을 할 수 있으면 대화는 저절로 자연스러워진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처리할 수 있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이더라도 제발 배우자와 대화할 때에는 대화 한 가지에만 집중하자. 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말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돌리자. '이 정도쯤이야...'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두 번째, 아내와 대화를 할 때엔 내가 앵무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뒷부분을 살짝 변형해서 따라 한다. 몇 번만 연습해보면 크게 어렵지 않다. 단언컨대, 이 기술(?)은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아내 : 여보, 오늘 오후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정말 황당하죠?

나 : 어이쿠, 당신이 정말 황당했겠네. (몸과 표정으로 맞장구 표현을 해주면 금상첨화다!)


아내 : 여보, 아랫집 누구누구가 이러저러해서 참 이상해요.

나 : 당신 말 듣고 보니 참 이상한 사람이네. (몸과 표정으로 맞장구 표현을 해주면 금상첨화다!)


아내 : 여보, 지훈이 담임 선생님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셔서 마음이 좀 불편해요.

나 : 에구, 그랬구나. 당신 마음이 많이 불편했겠네. (몸과 표정으로 맞장구 표현을 해주면 금상첨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지 마라. 제발 그 해결사 본능을 죽여야 부부간의 대화가 살아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런데 그렇게만 말하고 가만있으면 대화가 금방 끝나거나 이상하지 않으냐고? 천만에.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걸 느낀 아내의 다음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아내가 말할 때는 몸을 완전히 돌려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듣기. 어떤 말을 들었으면 그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기. 이 두 가지를 당장 실천해보자. 이렇게만 하면 늘 가정에 평화가 함께 할 것이라 확신한다. Peace ~~








*** 독자의 의견을 미리 듣고 반영한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공감의 댓글 또는 저와 다른 견해를 달아주시면 실제 책 발간 때 꼭 포함토록 하겠습니다^^
























이전 05화 부캐와 N잡러로 액티브 시니어를 꿈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