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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Mar 13. 2022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프로가 아니면 어때?  

 100세 인생 시대, 50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_ E.12

1.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인 남자 주인공(강동원)과 자원 봉사자인 여자 주인공(이나영)은 매주 목요일마다 교도소 면회를 통해 만난다. 목요일 오후의 면회 시간은 그 두 사람만의 행복한 시간이다.


나에게도 <나만의 행복한 시간>이 있다. 서울 종로구 OO빌딩 7층. 내가 매주 월요일마다 퇴근 후에 어김없이 찾는 곳이다. 취미생활의 하나로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린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로 버킷리스트에 적어두고 있다가 운명적으로 내게 찾아온 불면과 우울 증상을 스스로 이겨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19년 9월 16일부터 시작하게 됐다.  


2.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그림을 제대로 배우거나 그려본 적이 없었던 내가 나이 쉰 살이 넘어서 미처 몰랐던 작은 소질을 발견한 것이다. 역시 사람은 그게 무엇이든 일단 해봐야 안다. 게다가 주변에서 조금은 과장 섞인 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흥미가 급 상승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빠트리지 않고 미술학원을 찾았고, 꾸준히 하다 보니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연필 데생부터 시작해서 파스텔, 목탄을 거쳐 1년 전부터는 유화에 푹 빠져 지낸다. 어느새 그림 그리기는 나의 '부캐'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매주 월요일 저녁,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리기



3. 그림 그리기는 나에게 두 가지 유익함을 준다. 첫째, 지금껏 경험해보지 않은 색다른 행복과 즐거움을 준다. 그림을 시작하고 수개월쯤 지났을 때 '비록 취미로 그리는 아마추어의 그림이지만, 소중한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선물하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먼저 가족부터 시작했다. 첫 번째 대상자는 딸내미, 그다음으로 부모님께 초상화 선물을 드렸다.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 순으로...  한번 생각해보라. 살면서 초상화를 선물 받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인들의 좋아하는 모습에 내가 더 행복과 즐거움을 느낀다.


둘째, 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해 준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다 내 마음속 고요의 바다에 가라앉는다. 세 시간 동안 마치 명상을 하듯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한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절에서 변소를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르는데 나에겐 미술학원이 해우소인 것 같다. 월요일 밤 10시 미술학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마음과 발걸음은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해진다.


부캐나 취미생활로 기타, 드럼, 색소폰, 하모니카 등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캘리그래피나 서예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주말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도 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적절한 취미활동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그림 그리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자신은 그림에 도통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꾸준히 배우면서 그리다 보면 누구나 다 실력이 는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전에는 대학 입시나 밥벌이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질이나 실력을 따지기보다 흥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의 실력이 아니면 어떠한가? 내가 재밌으면 그만이다.


4. 딱 100명에게만 초상화 선물을 할 계획인데 2022년 12월까지 58개의 초상화를 그렸다. 앞으로 2년 정도 후엔 100개가 채워질 것 같다. 100호 선물 후엔 조금 특이한 전시회를 꿈꾸고 있다. 미리 그림을 전시해 놓고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고 선물 받은 사람이 그림을 들고 참여하는 콘셉트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1박 2일 스케줄로 빌리고, 다양한 맥주를 가득 쟁여놓고,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그림에 읽힌 추억과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고 싶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초상화를 선물해준 사람들에게 사전에 약속받은 대로 기부금 모금함을 비치할 생각이다. 기부를 통해 모인 돈으로 전시회 경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에 기부할 계획이다.  


내가 그려서 선물한 초상화들



5. 몇 년 전에 글쓰기 앱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기만 했다. 그러다가 가벼운 주제로 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브런치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급기야 책 한 권을 쓸 기회를 나 스스로 만들어냈다.


지난 2019년은 부모님의 결혼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부모님께 어떤 의미 있는 선물을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문득 내가 직접 쓴 책을 선물해 드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책의 제목은 부모님으로부터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뜻에서 <위대한 유산>으로 정했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얽힌 나의 추억에 대해 에피소드 형식으로 썼다.         


2018년 가을부터 약 6개월에 걸쳐 총 55개의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연재한 후에 책으로 냈다. 정성을 다한다는 뜻에서 교정과 편집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했다. 표지 디자인 정도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자가출판 플랫폼 <부크크(BOOKK)>를 통해 POD 출판을 하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출판을 할 수 있었다. 원고 집필에서부터 책 출판까지의 전 과정을 거의 혼자 힘으로 다 해낸 것은 내 인생의 값진 경험이자 소중한 자산이 됐다.                                                 


나의 첫 번째 책 위대한 유산



6. 그림 그리기, 글쓰기, 걷기, 봉사활동 등의 다양한 부캐 활동이 계기가 되어서 프로 작가도 아닐 뿐더러 글 쓰는 재주가 남다른 것도 아닌데 뜻밖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서울경제신문의 <라이프 점프>라는 40~50세대를 핵심 독자로 하는 미디어에 <인생은 50부터!!>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다. 2주 한번씩 정기적으로 원고를 써 보내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 칼럼의 반응이 괜찮았는지 또 다른 주제로 연재 칼럼 하나를 맡아달라고 한다. 신난다.


내가 50이 넘어서 칼럼니스트가 될지 꿈에 선들 상상했겠는가. 칼럼 제목처럼 정말 인생은 50부터인가 보다. 100세 인생의 후반전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날 수 있으니 평소 좋아하는 게 있으면 지치지 말고 꾸준히 지속하기를 권장한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금과옥조를 잊지 말자. 



서울경제 라이프점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인생은 50부터!!



7.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의 저자 김유진 변호사는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고, 어떤 사람은 별로 하는 게 없는데도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곤 한다."라고 하면서 "여유로운 하루는 시간에 끌려 다니느냐 아니면 내가 시간을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한다.


나는 평소 주변 사람에게 "도대체 그 많은 부캐 활동을 어떻게 다 할 수 있냐?"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내 답은 명쾌하다. 첫째, 부캐는 회사 업무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 골라서 해라. 그러면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즐겨하는 게임으로 밤샌 친구가 피곤하다는 말 하는 거 들어본 적이 있는가?


둘째, 위에 언급한 김유진 변호사처럼 시간을 주도적으로 써라. 시간에 끌려 다니지 말고 큰 틀의 시간 계획에 맞춰 움직여라. 그러면 여유는 저절로 생긴다. 셋째, 하고 싶은 일이 많을수록 그에 맞는 체력을 키워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8. 인생의 장년기가 길어졌다. 꿈꾸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한다. 김형석 교수의 말처럼 인생 후반전에 해보고 싶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만이라도 계속해 살려간다면, 늦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보다 더 큰 행복과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사전 계획과 준비에만 바쁘고 시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일수록 '내일부터는 꼭!'을 부르짖는다. 그렇지만 내일은 또 다른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일은 영원히 오늘이 되지 않는다.


뭔가를 하기에 인생의 적당한 시기란 없다. 우리는 이미 인생의 전반전을 통해 그런 시기는 기다려봐야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 않으려는 핑계를 만들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서 바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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