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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May 30. 2024

길에서 만난 새들

이게 국토종주야 탐조여행이야

그 화려한 엉덩이를 마주한 것은 국토종주 1일 차 부산 삼락생태공원을 걷는 와중이었다. 무언가가 포르륵 날아서 나를 앞질러 갔다. 찰나의 마주침이었다. 정체를 파악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그럼에도 내 머릿속엔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후투티!'


신기하기도 하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후투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예전에 읽은 탐조 글에서 후투티라는 이름을 주워 읽고 이름이 귀엽네, 언젠간 실제로 볼 수 있을까, 생각한 게 전부였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이름이 작고 독특한 생김새의 새를 마주하는 순간 마치 계시처럼 떠오른 것이다.



겁도 없지. 새는 한참을 내 앞에서 맴돌았다. 쪼르르 걷다가 바닥을 콕콕 몇 번 쪼고 또 쪼르르 걷고의 반복이었다. 나는 경탄 가득한 마음을 안고 숨죽인 채로 한참을 구경했다. 세상에 저렇게 희한하게 생긴 새가 다 있네. 내가 사진과 영상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건졌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새는 이내 날아올 와 같은 가벼운 날갯짓을 해서 나무 위로 포르르 날아갔다.


새를 뒤로 하고 걸으며 인터넷에 후투티를 검색했다. 과연 그 신기한 새는 후투티가 맞았다! 내가 후투티를 보다니! 여름 새라던데 이 겨울에 후투티를 만나다니! 너무 신이 나서 부산을 걷는 내내 후투티를 생각했다. 심지어는 노래를 지어 마음속으로 부르고 다니기까지 했다. 후투티투티투티프루티. 후투티는 어쩜 이름도 후투티인지.


국토종주 1일 차의 기분은 후투티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흥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친구가 남부지방에서 꽤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상남도를 걷는 동안 후투티를 열다섯 마리는 본 것 같다.


귀여우니까 한 장 더


새를 만나는 일은 내가 여행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살고 있는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도 새로운 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물며 한국땅을 가로지르는 국토종주 기간 동안에는 어땠겠는가. 이따금 나타나는 새들은 지루한 걷기에 별사탕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뭐랄까 게임하다 보면 아주 희귀한 확률로 뜨는 스페셜 이벤트 같은 거랄까. 나는 포켓몬 도감을 채우는 느낌으로 새를 보고 다녔다.


길에서 만난 새들을 여기에 모아 본다. 새를 좋아할 뿐이지 잘 아는 사람은 아니라 이름을 틀리게 적을 수도 있다는 점을 참고해 주시길. 맞는 이름을 알려주시면 감사히 받아 적겠습니다.



가마우지 @부산 을숙도, @합천 청덕면, @양평 개군면

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었던 가마우지. 까마귀의 물새 버전 같다.



기러기 @부산 삼락생태공원, @여주 창동

겨울이었기 때문에 정말 정말 많은 기러기를 볼 수 있었다. 기러기도 보자마자 기러기인 걸 알았다. 전통혼례 때 본 나무 기러기랑 똑같이 생겼다(?). 기러기는 한 쌍이 짝을 지어 살고, 한 마리가 죽어도 재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신랑 신부를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고 한다.



솔개 @부산 삼락생태공원

사실 아리까리한데 그나마 솔개에 가까워 보였다.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맹금류라서 온갖 맹금류 사진을 다 뒤져 봤는데 정확히 일치하는 사진은 못 찾았다. 걷다 보면 종종 맹금류가 내 머리 위를 빙빙 도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나를 노리는 건 아니었겠지...



말똥가리 @양산 생태습지공원

얘도 확실친 않지만 크기가 좀 작아서. 어쩌면 솔개일 수도.



직박구리 @양산 어딘가

직박구리는 600마리 정도 본 듯. 얘는 뭐... 출퇴근길에도 많이 보니까... 어랏 새다! 해고 봤는데 직박구리면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아시나요. 가끔 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삑삑 울어대서 왠지 밉상. 겨울이라 그런지 새들이 다들 통통 빵빵 동글동글하다.



물닭 @부산 화명생태공원

물닭도 흔한 새라서 딱히 신기하진 않았다. 서울에서도 종종 보이니 뭐. 물닭을 처음 본 건 독일에서였기에, 유럽에만 사는 새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도 매우 자주 마주쳐서 흔새인 줄 알게 되었다.



까치 @양산 어딘가

까치는 뭐... 이천 마리는 본 듯... 까치가 없는 동네가 잘못된 동네인 것 아닐까... 까치는 참 예쁘게 생겼는데 흔한 새인 게 신기하다. 요새는 비둘기만큼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음식물 쓰레기봉투 뜯고 있더라.



딱새 @낙동강변 어딘가

새 사진을 찍은 장소가 거의 남부지방인 이유는 일단 번화한 동네일수록 새가 많지 않기도 했거니와 한번 찍은 새는 굳이 다시 찍지 않고 눈으로만 구경했지 때문입니다. 일단 처음 보는 새를 발견하면 발을 멈추고 숨을 멈추고 조용히, 천천히 하지만 빨리 카메라를 꺼낸다. 그리고 조심조심 카메라를 들이밀... 면...! 대부분의 경우 새가 도망간다. 딱새도 그렇게 한 번 놓치고 재시도한 뒤에야 찍을 수 있었다. 동글동글하니 흰 점이 귀여운 딱새. 은근히 자주 볼 수 있었다.



왜가리 @합천

왜가리도 뭐... 왜가리는 말이죠 덩치가 커서 목격하면 뭔가 레어 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주지만 사실은 흔새인 그런 친구입니다. 저희 집 앞에도 엄청 많고요 전국적으로 많습니다.



왜가리 @양평 개군면

양평 어딘가의 벤치에 누워 자는데 가까이에 쉬고 있었던 새들. 얘들은 너무... 너무 너무라 제발 희귀한 새여라 하고 빌었는데 아무리 봐도 왜가리. 믿을 수 없어서 30번은 검색해 봤다. 난 해오라기 이런 새이길 기대했다고.



고니 @대구 용흥지

앗 내가 고니를 보다니. 고니와 백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없다입니다. 고니의 한자 이름이 백조라고 한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조와 다르게 생겨서, 말하자면 이 친구가 좀 망충하게 생겨서 다른 새인 줄 알았는데... 유럽에 많은 건 큰고니고 내가 본 애들은 그냥 고니라고 한다. 양평을 지나갈 때 즈음이 짝짓기 철이었는지 한데 모여서 시끄럽게 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제법 장관이었다.



고니와 기러기 @구미 양호동

저기 죄송한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피하시면 저도 상처받거든요.



넓적부리 @대구 용흥지

저는 얘들이 그냥 고니랑 같이 떠다니는 오리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사진 정리하면서 확대해 보니 아니 무슨 새가 티라노사우르스처럼 생긴 거예요. 깜짝 놀랐죠. 깃털 색을 보니 넓적부리인 것 같다. 좀 무섭게 생겼다. 성질을 건드리면 혼날 것 같다.



붉은머리오리 @대구 용흥지

오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수컷 오리가 초록 머리고 암컷 오리가 갈색이고...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머리 박고 반성해. 오리과에도 정말 많고 다양한 새들이 있었음을. 붉은머리오리는 얼굴 한가운데에 흰 줄이 있다. 눈이 빨개서 얘도 조금 무섭게 생겼다.



백로 @대구 현풍면, @구미 양호동, @충주 살미면

왜가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새. 논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백로는 싱글플레이어인 줄 알았는데 충주에서는 때로 몰려 있어서 신기했다.



백로 @양평 양평읍

얘는 말이죠... 저 멀리 걸려있는 저것이 흰 비닐인고 흰 새인고 가물가물하여 일단 줌 당겨서 찍었는데 너무나도 새라서 빙고 했던 기억. 하지만 흔새 백로였다. 강가를 걷다 보면 이런 착각이 무리가 아닐 정도로 나무에 찢어진 비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안타까운 장면이었음.



갈매기 (?) @고령 다산면

너무 멀어서 생김새 확인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내 마음대로 갈매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작고 귀여웠으니까 붉은부리갈매기 아닐까?



뱁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상주 정동면

하 뱁새 너무 귀여워 바닥 쾅쾅. 뱁새도 시골길 걷다 보면 은근히 흔하다. 참샌가 싶어 보면 뱁새인 경우가 많았다. 우르르 몰려다니고 어디 덤불 같은 데서 바스락거리면서 움직인다.



쇠박새 @상주 사벌국면

내가 좋아하는 새들 중 하나. 이유는 귀엽기 때문입니다. 귀여운 새가 최고다.


오색딱따구리 @밀양 하남읍 @창녕 영아지고개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는 정말 자주 들었는데 실제로 목격한 건 이게 다다. 청딱따구리도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 딱따구리도 은근히 보기 쉬운 새. 서울 산에 가면 볼 수 있고 심지어는 경기도 아파트촌에서도 목격한 적이 있다. 검정 빨간 색 조합이 귀여워서 좋아한다.



꿩 @충주 수안보면

꿩... 은 제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조용한 길을 혼자 걷다 보면 갑자기 '꾸루룩 푸드덕!!!!!!!!'하고 요란뻑적지근하게 날아가며 저를 놀래키는 새가 있는데 십중팔구, 아니 십중십 꿩입니다. 그렇게 난리만 안 쳐도 내가 발견하지 않을 터인데 뭣하러 그 요란을 떤단 말인가. 화가 나서 꿩고기가 유명한 수안보에서 꿩 요리를 먹어주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장끼 색이 예뻐서 목격했을 땐 기분이 좋았다.



청둥오리 @충주 수안보면

흔한 새인 것 같지만 의외로 몇 번 마주치지 못했다. 초록 머리 참 예뻐요.



댕기흰죽지 @양평 양평읍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 뒤에 댕기가 뭐랄까 호주 남자들이 하고 다닌다는 Mullet 같다. 살짝 양아치 느낌.



댕기흰죽지 @서울 영등포구

하 댕기가 잘 안 보여서 뭔가 새로운 새일 줄 알았는데... 깃털 색을 보니 아무래도 댕기흰죽지가 아닐까 싶고요... 암만 레어 포켓몬이어도 두 번째 마주치면 감동이 덜한 법이지예.



방울새 @양평 양평읍

얘는 사진이 없어서 네이버 검색 결과 캡처로 대신합니다. 왜 꼭 기록해두고 싶었냐 하면, 걸어가다가 새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너무나도 방울새 같은 거다. 방울새 우는 소리 같은 것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냥 또로로로 우는 게 이거 방울새 아냐 싶었달까. 생김새를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방울새가 맞았다. 야 나 새 영재 아니야? 싶어서 뿌듯한 마음에 캡처해 둔 것.



참새 @서울 영등포구

참새야 뭐 오천마리정도 봤지만 매화 꿀 따먹는 참새는 특별하니까요. 엉덩이 꽃자이크.



백할미새 @인천 계양구

완주하는 날까지 새로운 새를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던! 할미새는 할머니 닮아서 할미새가 아니라 걸을 때 꼬리를 흔들어서 할미새라고 한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를 발견했는지 갸우뚱 갸우뚱 하다가 떠나버린 귀여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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