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었겠지요" 2023년도에 나온 시리즈물 <무빙>의 대사다. 오래전부터 배우 조인성의 팬이라서 디즈니 플러스까지 가입을 하면서 본 드라마이다. 하지만 나의 가슴을 울린건 배우 류승룡(구룡포 역)과 곽선영(황지희 역)의 파트였다. 황지희의 과거를 구룡포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다 묻지만 구룡포만은 묻지 않는다. 황지희가 왜 안 묻냐고 하니, 구룡포는 "이유가 있었겠지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여기서 굉장히 감동 하였다.
Children Playing on the Beach / 메리 카셋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를 보면서 공감이 격하게 될 때가 있다.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이란 좋게 말하면 다채로워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사정, 이유들이 다 있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 인생을 알 만한 나이가 되면 타인에게 질문하는 법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하겠다. 아니, 고민이라 할 것까지일까 싶다.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인 것을 물어볼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무례하게 질문하고 훅 들어오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그래서 "이유가 있었겠지요"라는 대사가 더 격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라는 이야기다.
다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굳이 그들에게 다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도 타인의 모든 인생사를 이해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다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의 편견과 생각에 끼워 맞추어 상대의 삶을 판단하고 오해까지 한다. 왜냐면 그들은 내가 아니고 나도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온 맥락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는 타인의 삶을 들으면서 그들의 삶을 존중할 뿐이다.
조앤디디온 (미국의 소설가이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야기한다. 인생사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인간 관계와 경험을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는 맥락이 된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신을 고정된 존재로 파악하지 않는다. 자기 이해는 서사라는 구조를 띤다."
우리 인생은 맥락이다. 나는 40대를 살아오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과 시간 가운데 얽히고설켜서 지금의 나로 살고 있다. 이것은 누구도 알 수 없고, 나만 아는 것들이다. 때론 내가 나를 속일 때도 있는데, 남들이야 오죽하랴.
상대가 나에게 해준 말, 현재 이 상황 그대로만 듣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상대가 이야기 한 만큼만 받아들이자. 때론 상대가 이야기하기 싫어서, 숨기고 싶어서 말을 하지 않는 이유들이 있다. 이것이 타인에 대한 관심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타인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이해가 되면, 남의 상황도 이해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남의 사소한 것들이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그 사람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남들에 대한 관심 이전에, 나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고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에 할애를 해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