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정도였을까, 이때부터 공황장애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이 많은 광장이나, 폐쇄된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터널을 지날 때, 안 가본 장소에 갈 때, 비행기 안에서 특히 심했다. 그때는 약도 갖고 있지 않았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공황이 왔을때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비행기에서 당장 뛰어 내리고 싶었다. 공황장애로 생활과 생각의 제약도 생겼지만, 나는 얻은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참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공황 때문에 힘들던 시절, <교회 오빠>라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많이 마음이 어려웠다. 단순히 이분의 힘든 삶 가운데 그보단 내 상황이 낫지 하는 안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오늘을 나는 살고 있다. 이 소중한 하루에는 소소한 하루의 일상이 주어진다.
가족과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학원에서 아이들과 힘든 씨름을 하는 것,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 이유 없는 감정기복으로 인한 우울감 등까지도. 이러한 소소한 하루의 일상이 내가 뭘 잘해서 당연한 상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일상의 작은 일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감사로 느껴졌었다. 그때 공황장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약 1개월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공황장애는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지만, 심리적인 증상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틱한 효과가 오래가진 않았지만 감사를 나의 마음이 먼저 깨닫고 몸이 깨닫는 순간 나의 신체 증상들도 함께 사라짐을 경험했다. 또한 많은 경우, 신체적 증상이나 병들이 마음으로부터 오는 비중이 크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감사는 우울한 틈이 없게 해 준다는 걸 알았다.
"발작, 장애 이 단어가 주는 연상은 왠지 재앙적인 상황들입니다. 환자분들에게 공황발작이라는 단어보다는 그냥 공황이 왔다(경험했다)라고 표현하고 공황장애라기보다는 공황병이라고 표현하라고 권합니다. 어떤 언어를 선택하는 가에 따라서 연상되는 의미가 다르고 그 의미에 따라 고통의 크기도 변하기 때문입니다."<굿바이공황장애, 최주연>
이렇듯, 어떤 단어가 붙느냐에 따라서도 사람이 느끼는 증상의 심리적 크기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 공황장애의 약이 되었던 감사라는 실체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내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내가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상,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여기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면, 나에게 주어진 한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중한 일이 되는지 모른다.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심지어 나에게 닥친 고난 까지도 감사로 덮을 수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세상이 다 미워 보였다.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 목사님의 말씀에 콧방귀가 뀌어졌다. 모든 것이 감사요 은혜라는 찬양이 흘러나왔고, 이것을 따라 부르시는 목사님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악마처럼 욕을 했다. 이 큰 교회에 나랑 나이차이도 얼마 안나는 젊은 나이에 담임 목사님이 되어 출세했으니 은혜 찬양이 절로 나오시겠네! 이런 마음이 속에서 부글거렸다. 순간 갑자기 내 마음 안에 "힘든 상황도 은혜다"라는 마음이 거짓말처럼 깨달음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이때부터 모든 것을 감사로 인을 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일어날 내가 겪는 모든 일들에 미리 감사로 도장을 찍었다.
이 마음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넘어지기 쉬운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다지듯이, 매일의 의지를 가지고 감사로 내 인생을 덮고, 감사의 운동을 하고, 감사라는 이름의 도장을 내 인생 곳곳에 찍는 노력을 한다면, 선물로 주어진 소중한 하루를 좀 더 갚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감자먹는 사람들 / 반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