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인간미가 안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경험에는 색이 뚜렷하지 않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에 적응하고, 어떤 그룹에서 적응하는 데는 가장 좋은 성향의 사람들이다. 뭔가 반듯한 듯하고, 실수도 없다. 항상 평타 이상은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마음이 그리 가지 않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들. 왠지 개인적으로는 친해지고 싶지가 않다. 이유는 그 사람의 속과 생각을 잘 모르겠어서 이다. 이런 사람들을 요새말로 회색분자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런 유형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는 것 같다. 철새처럼 유리한 쪽만 골라서 다니는 사람은 기회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지만, 인류역사에서는 회색분자들이 올바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반대로 색이 뚜렷한 사람들을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 칭하기도 한다.
우리 학원의 인테리어는 주로 회색이다. 싱크대도 회색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후로도 필요한 의자나 물건들을 살 땐 웬만하면 회색톤의 무채색으로 고른다. 미술학원은 워낙 재료와 물건들이 다양하고 많아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정신이 없고 지저분하다. 그래서 가장 차분하고 성격이 없는 무채색인 회색 가구나 집기들은 여러 색의 재료들과 조합이 잘 된다. 회색은 세련된 도시적인 색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옷을 살 때도 회색에 손이 많이 간다. 왜냐하면 튀지 않고, 여기저기 매치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정신없지도 않고 차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물건들, 생활에서 볼 수 있듯이 회색은 중도를 나타내고, 타협적이고, 차분하며 어디든 잘 스며들며 튀지 않는 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 색이기도 하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극과 극인 흰색과 검정을 섞어서 나오는 색이기도 하다.
여러 색을 감별하거나 조색할 때 회색은 눈을 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색칩들을 본 후 정확한 구분을 위해서 잠시 회색을 쳐다보고 눈을 쉬게 한 다음 다시 여러 색들을 본다. 이색 저색들을 보게 되면, 눈 안에서 여러 색들이 섞인 잔상 효과가 일어나는데, 이를 없애 주기 위한 처방이다.
이 회색이라는 특징을 장점으로 풀어가면, 흑백논리가 아닌 맥락적이라는 특징을 들 수 있다. <브리꼴레르, 유영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기존의 원칙과 규칙, 규율과 절차를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기 일의 목적을 주어진 상황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할 줄 안다. 이들은 기존의 음표와 멜로디를 활용하되 주어진 상황에 어울리는 곡을 즉흥적으로 작곡해서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를 닮았다. 현명한 판단력을 보유한 전문가일수록 흑백논리로 판단하지 않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회색지대가 요구하는 맥락의존적 판단을 한다."
상황과 상황을 이어주는 맥락적인 특징으로 융통성이 있지만, 뚜렷한 색채가 없기도 한 회색. 우리는 이 회색이 가진 장단점을 잘 이용하여, 필요할 땐 맥락적인 사람으로, 또 다른면으로는 인간적인 색채가 뚜렷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색이 뚜렷한 사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인 사람, 우리는 어떤 색으로 살아가야 맞는 걸까?
Hans Op de Beeck / The Conver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