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쳐보드 <출처 : 포도뮤지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
영화 "교섭" 중의 대사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태어나서 쭉 한 곳에서만 산 사람도 있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살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면 끝이 보이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도, 어려움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견딜 힘이 생길 것 같다. 그때를 위하여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를 해놓을 수도 있겠고,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 땅에서 더욱더 현지화되고, 적응할수밖에없는 본능이 발동하는것 같다. 그래서 살려고 뭐든 하게 되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게 된다. 차근차근 뭔가 해나가기가 더 힘들다. 앞날이 불분명하기에 그냥 되는 대로 주어진 하루를 살게 된다. 현지에서 그들의 문화에 더 흡수되고, 딴생각 품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있는 현재, 이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카지노라는 시리즈물에도 비슷한 내용들을 볼 수가 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최민식(차무식 역)은 이미 필리핀에서 자리 잡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고, 필리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한국식대로 해보려는 한국에서 파견 온 애송이 경찰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이 모습은 영화 교섭에서 아프가니스탄 물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나서려 하는 한국외교관인 황정민(정재호 역)에게 협상가 현빈(박대식 역)이 한마디 하는 것과 오버랩된다.
나라마다 사회가 돌아가는 공통적인 시스템은 있지만, 그 사회 안에 들어갔을 때만 알게 되는 그 나라의 특유묵언의 법들이 있다.
한 예로, 외국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절대 한인 이민자들끼리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 서로 묻는 사람도 없거니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들의 인생은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기 위해 이민을 온 그 시점 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과거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필요한 정보가 아니다. 저마다의 고국을 떠나 올 수밖에 없는 말 못 할 사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묻는다는 건 무례함을 넘어서 "나 초보자야" 하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한국에서 잠시 여행을 오거나 정해진 기간동안 다녀가는 주재원들은 묻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럼 속으로 아, 초보구나, 온지 얼마 안됐구나, 현지인은 생각한다. 암묵적인 분위기와 규칙에 따라 한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150명이라는 숫자가 넘으면 인간은 가공의, 무언의 결속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며, 뒷담화 이론으로 인한 인간의 언어는 픽션을 만들어내고 이로써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 간다.
엘에이의 한인사회에서 굉장히 역사 깊고 큰 교회가 있었다. 담임목사님 자리가 꽤 오랫동안 비어있었고 드디어 한국에서 젊은 목사님이 초빙되어 오셨다. 그 당시 40대 초반정도 되셨는데, 미국에서 엘리트코스로 신학공부를 하신 프로필이 대단하신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은 본인 소개를 몇대째 목사집안이고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 출신이다를 강조하셨다. 이런것들이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민 한인사회에서 그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직 때가 묻지도 않고 말끔하고 고운분이 이 험한 이민자의 땅에서 거칠대로 거칠어진 이민자들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을까. 그 게 첫 번째 관심사였다.
이민자들은 거칠 수밖에 없다. 교섭의 현빈(박대식 역), 카지노의 최민식(차무식 역) 두 캐릭터 모두 다 거친 인간의 끝판왕이다.
식물을 새로운 곳에 옮겨 심었을 때 뿌리를 내리고 그 땅에 단단히 심기기까지 몸부림의 과정을 거치고, 자리 잡았을때 더욱 더 튼튼한 식물이 되는 이치와 같다고 할까.
영화의 끝에
황정민(정재호 역)은 현빈(박대식 역)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박대식,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없어. 알았지?"
어쩌면 현재 그 땅이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자피 이 땅에 태어나면, 어느 땅에 있던지 동그란 지구의 어느 한 부분에 살게 되고 결국 죽음이라는 영원의 세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이 나의 자리이다.
리비아사막 / 천경자 /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