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찾아서] 이화여대 앞 미스터 서왕만두
2013년 소롱포(샤오롱바오·중국 상하이식 만두)를 처음으로 먹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김이 펄펄 나는 소롱포를 하나 숟가락에 올려 후후 불며 살짝 만두피를 깨무는 순간, 뜨끈한 육즙이 흥건하게 흘러나와 입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정말 새로웠다. 육즙을 먼저 머금은 뒤 숟가락에 올린 만두를 한 입에 넣자 고기소의 풍성하고 진한 맛이 입 속에 가득 찼다.
그때만 해도 내가 먹어 본 만두는 고기만두, 김치만두, 왕만두, 군만두 등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만두들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소롱포와 같은 만두는 새롭게 느껴졌다. 그 이후 중국 본토는 물론 일본·대만·러시아 등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만두를 맛봤고 이런저런 소롱포도 많이 먹어봤지만, 그때의 소롱포를 대부분 능가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타이베이 출장 때 가봤던 '딘타이펑'의 본점에서도 소롱포를 먹어봤지만, 이곳에서 처음 소롱포를 먹은 충격만큼은 아니었다. 그 소롱포를 처음 먹었던 식당이 바로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식당인 '미스터 서왕만두'다.
서왕만두는 이대생들에게는 '만두 맛집'으로 정말 유명하다. 중국인 부부가 직접 만두를 빚어서 파는데, 학생들도 많이 가고 어느새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매년 블루리본을 받고 있으니 말 다했다) 멀리서까지 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10여 년 전만 해도 이화여대 근처 꽤나 가파른 오르막길 골목 어귀에 있는 조그만 가게였다. 그때는 가게에 10명도 채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몇 년 후 가게를 확장 이전해 지금은 꽤 그럴듯한 모양새가 됐다. 가게를 이전한 이후에도 몇 번 더 갔는데 만두 맛은 거의 변하지 않아 반가웠다. 가게가 커지면서 젊은 직원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만두 맛은 어디 안 간다.
최근 정말 오랜만에 이곳 만두가 생각이 나서 가게를 찾았다. 요 몇 년 사이 이대 앞 상권이 많이 죽으면서 망한 가게들도 많지만, 기존에 맛집으로 이름난 가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이전하지 않고 계속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서왕만두도 그중 하나다. 주말 늦은 오후, 애매한 시간대에 찾아 손님이 없을 시간대였지만 그래도 테이블 두어 개가 차 있다. 나 역시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소롱포를 주문하고, 내친김에 군만두도 추가로 주문해 봤다.
먼저 나온 군만두. 군만두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뉘는 것 같다. 한쪽은 굽고 한쪽은 찌듯이 조리하는 식으로 촉촉하게 굽는 방식(주로 일본식 교자가 이렇게 요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만두 전체를 기름에 푹 담가 튀겨버리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튀김만두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긴 하다. 여하튼 서왕만두의 군만두 역시 만두 전체를 기름에 푹 담가 튀긴 비주얼이다. 그렇기에 바삭함이 강조된다. 동시에 쫄깃함도 놓치지 않았다. 이렇듯 만두피도 맛있지만 만두소는 더욱 눈에 띈다. 일반적인 만두의 만두소보다 돼지고기가 더 꽉 차 있고 튀긴 만두피와 어우러져 다소 느끼하면서도 풍성한 고기맛이 느껴진다. 기대한 것만큼 육즙이 팡팡 터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푸짐하게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역시 소롱포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통 위에 소롱포 6개가 가지런히 담겨서 나온다. 이 소롱포를 이대로 그냥 한입에 넣어버리면 너무 뜨겁기에 자칫 입 안이 데일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우선 소롱포 하나를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젓가락질에 자신이 없다면 그냥 숟가락을 써도 된다) 숟가락에 살포시 올린 후, 치아로 만두피를 살짝 뜯는다. 그러면 만두피 속에 꽉 차 있던 육즙이 흥건하게 흘러나와 입 안을 감싼다. 천천히 육즙을 즐긴 후, 살짝 식은 소롱포를 한입에 넣어주면... 만두의 맛이 이렇게 진할 수 있구나 깨닫게 된다.
만두소에는 돼지고기와 부추, 생강, 파 등이 들어간다. 만두소 자체도 묵직하지만, 얇은 만두피 속에 담긴 특유의 육즙이 소롱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얇은 만두피 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육즙이 들어갈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한데, 알고 보니 소롱포를 만드는 사전 작업 중 하나가 육수를 젤라틴으로 굳히는 것이라고 한다. 만두를 빚기 전에 이 젤라틴을 만두소와 함께 버무려 만두피로 감싸면, 이걸 찌는 과정에서 젤라틴이 녹으면서 육즙이 된다고. 그래서 잘 된 소롱포는 처음 만두피를 살짝 뜯을 때 만두소 사이로 육즙이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곳의 소롱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자칫 입천장이 델까 천천히 후후 불면서, 여유 있게 소롱포의 맛을 즐긴다.
만두 전문점답게 이곳은 다른 메뉴 없이 만두로 진검 승부한다. 십여 년 전에는 진짜로 만두만 팔았다. 몇 년이 지나고 갖은 해물을 넣고 깔끔하게 끓인 중국식 해물탕 메뉴가 추가됐고, 이후에 새우 위주 국물에 수제비를 넣은 해물수제비가 다시 추가됐지만 여전히 메인 메뉴라기보다는 곁들임 메뉴라는 느낌이 강하다. 보통 중국집에서 만두가 곁들임 메뉴 역할을 한다면, 이곳에서만큼은 만두가 메인 메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맛을 낸다.
오랜 세월 동안 만두는(특히 군만두) '서비스 메뉴'로 이미지가 굳어져 있어 그동안 한국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만두가 메인 메뉴인 만두 전문점도 예전에는 찾기가 쉽지 않았고 차이나타운 정도에나 가야 조금 있는 정도였다. 그런 집에서 먹는 만두는 일반 중국집에서 먹는 만두와는 과장 좀 보태 차원이 달랐다. 이게 제대로 된 만두구나 싶었다. 요 몇 년 사이 기존 한국식 중화요리 외 마라탕 등 중국식 요리가 유행하면서 소롱포, 딤섬, 자오쯔 등 중국식 만두도 한국에 많이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만두 맛을 제대로 내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 서왕만두'는 제대로 된 중국식 만두(특히 소롱포)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좋은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