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한마리, 이보다 좋은 '풀코스' 요리가 있을까

[먹는 게 남는 것] 취향에 맞다면 최고의 닭요리, 닭한마리 이야기

by 챠크렐

대학생 때 동기, 선후배들과 술을 마시며 많이 먹었던 음식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닭한마리'다. 마침 다니던 대학교 인근에 옛날부터 맛집으로 유명한 닭한마리집이 있어 푸짐하게 한 잔 하고 싶다고 하면 종종 갔었다. 그전에는 이 요리를 몰랐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접했는데, 처음 먹고 나서 "이런 음식을 몰랐다니!"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진하게 우러난 닭육수에 잘 익은 닭을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장, 부추를 버무린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니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맛이 느껴졌다. 여기에 칼국수와 죽까지 시켜 배불리 먹으니 그야말로 풀코스로 닭요리를 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닭한마리에 대해 외국인 관광객,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만 많이 찾고 정작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한국 요리라고 많이 그러는 것 같다. 또 닭한마리를 먹을 거면 삼계탕, 백숙, 닭도리탕, 닭갈비, 닭칼국수 등을 먹지 굳이 닭한마리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의문도 많다. 이러한 저평가에 대해 닭한마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분명히 다른 닭요리로는 채울 수 없는, 닭한마리만이 주는 만족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닭한마리에 대한 박한 의견에 이유가 있긴 하다.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 브이로그나 인스타그램 등을 보면 닭한마리는 꼭 한 번씩 등장한다. 몇 년 전 미국 대북정책 특사였던 스티븐 비건이 한국에만 오면 꼭 찾는 닭한마리집이 있다고 화제가 되면서 더더욱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 같다. 또 닭한마리 전문점이 서울(특히 사대문 안)에는 많이 있지만 수도권 밖으로 나가면 찾기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닭한마리의 친척 격인 닭칼국수는 많음에도 닭한마리 식당이 별로 없는 걸 보면 요리 자체가 서울 밖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맨 처음 언급했던 닭한마리 맛집도 사대문 안에 있고...


하지만 동대문 쪽에 닭한마리 식당들이 모인 골목이 있고, 서울 곳곳에 오랫동안 운영해 온 닭한마리 전문점이 있는 것을 보면 닭한마리는 분명히 수요가 확실하다. 그냥 특유의 매력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계탕과 닭도리탕, 닭갈비, 닭칼국수가 각각의 특징이 있는 요리이듯 닭한마리도 자신만의 특징이 있는 독자적인 닭요리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닭한마리를 먹으면서 얘기해 본다.


1.jpg 최근에 먹은 닭한마리. 1인분이 되는 집이라 반마리가 나왔는데 실제 닭 한마리가 들어간 양은 이보다 훨씬 많다.

최근에 간 강남구의 한 닭한마리집. 특별히 맛집으로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내부가 매우 넓고 깔끔하며, 무엇보다 1인 손님들은 닭 반마리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그래서 보통 닭한마리는 저 사진보다는 닭이 훨씬 많이 들어가 있다). 부위별로 잘라진 닭 반마리를 비롯해 부추, 파, 떡, 감자, 수제비 등 갖은 재료들을 육수에 펄펄 끓인다. 이 재료들이 익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보통은 닭을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좀 더 빨리 익는 채소, 떡, 수제비 등을 먼저 먹게 된다.


2.jpg 소스에 닭날개, 가래떡, 수제비까지.


애피타이저처럼 떡과 채소를 먹다 보면 닭도 적당히 익는다. 한 4~5분 정도 센 불에 끓이면 닭이 익는데 이때부터 계속해서 끓여 주면서 닭을 하나씩 건져 먹으면 된다. 육수는 맑고 깔끔하면서도 닭의 맛이 잘 우러났다. 여기에 충분히 익힌 닭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첫 입은 그냥 먹고, 두 번째 입부터는 미리 준비해 둔 특제 소스와 생부추를 얹어 먹어준다. 아까 먹다가 남은 떡과 수제비도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3.jpg 이 특제 소스가 닭한마리 식당에 따라 차이가 있다. 닭한마리 맛집은 이 소스 자체도 별미다.


보통 닭한마리를 먹을 때는 수북히 얹은 부추에 간장과 고춧가루, 설탕 등을 넣은 특제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간장에 갖은양념이 돼 있어 짠맛과 함께 새콤함과 달콤함을 복합적으로 맛볼 수 있다. 닭한마리 자체는 그냥 육수에 갖은 재료들을 넣고 끓은 요리라 식당별로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소스는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늘이나 생강, 겨자 등을 넣어 맛을 강하게 한 곳도 있고(이런 곳은 알싸함도 좀 느껴진다) 설탕을 많이 넣어 단맛을 강조한 곳도 있다. 아예 소스 자체에 양념 다대기가 들어가는 곳도 있는데 이런 곳은 소스가 살짝 맵기도 하다. 이곳의 경우 다대기가 들어가거나, 생강이나 겨자가 많이 들어가지는 않아서 무난한 맛이다. 딱 정석적으로 끓인 닭과 잘 어울리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본인이 원하면 추가를 요청할 수는 있다.


4.jpg 이제 야채까지 완전히 익었으면 불을 줄이고 살살 끓여가며 천천히 즐겨준다.


내가 생각하는 닭한마리의 가장 큰 장점은 '담백·깔끔함'이다. 닭 자체가 원래 그렇게 기름지지 않은 담백한 고기이지만, 닭한마리는 맑은 국물에 양념을 강하게 하지 않고 끓이다 보니 더욱 그런 성격이 강조된다. 닭육수의 시원한 맛을 느끼다 보면, 닭한마리의 담백함을 다른 닭요리로는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삼계탕과 닭백숙은 시원함과 깔끔함보다는 구수함과 인삼·대추 등 약재 느낌이 강조되고, 닭칼국수는 면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물이 좀 걸쭉해지기 때문이다. 특제 소스를 찍어 먹으면 감칠맛도 챙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뭐 하나 빠질 데 없는 요리다.


식성에 따라서는 닭한마리에 김치나 다대기양념을 넣고 끓여 좀 맵게 먹어도 좋다. 예전에 내가 자주 갔던 집은 기본으로 다대기가 좀 들어가 있어 끓이면 국물이 좀 붉어졌었다. 나는 가끔 맵게 먹고 싶을 때 다대기양념을 넣어 끓이기는 하지만, 김치를 넣어 먹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대학교 때 한 선배의 '강추'로 김치와 다대기를 냄비에 한데 넣어 먹어본 적이 있는데 입에 살짝 안 맞더라. 그래도 바꿔 말하면 닭한마리가 그만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요리라는 의미가 아닐까.


5.jpg 칼국수를 시키니 거품이 마구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남은 육수도 걸쭉해진다.


앞에서 닭한마리가 '풀코스 닭요리' 같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닭을 다 건져먹으면 으레 칼국수나 죽을 해 먹기 때문이다. 닭을 대강 다 건져먹었으면 슬슬 칼국수 사리를 넣을 때가 됐다. 칼국수면을 넣고 불을 다시 세게 하니 엄청나게 많은 거품이 피어오르면서 면이 서서히 익기 시작한다. 닭이 잔뜩 우러난 국물에 익은 칼국수를 먹으며 탄수화물이 주는 만족감을 느껴본다.


6.jpg 마무리는 역시 쌀이다.


칼국수를 끓이면서 면이 육수를 빨아들여 육수의 양이 확 줄고, 걸쭉해진다. 이때 마지막으로 죽을 만든다. 날계란과 종종 썬 파를 얹은 밥을 가마솥 안에 적당히 잘 펴서 보글보글 끓이면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닭계란죽이 완성된다. 불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죽을 건져 먹는다. 그러면서 마지막 남은 건더기와 육수까지 싹싹 긁어먹는다. 역시 코스요리의 마지막은 면과 밥이라는 진리를 닭한마리를 먹으며 되새긴다. 그렇게 면과 밥까지 다 먹으면 어느새 배가 부르다. 추운 날씨, 몸이 따뜻해지고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강추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7.jpg 언젠가부터 자극적인 음식을 안주로 먹으면 다음날 속이 안 좋았는데 닭한마리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어 좋다.


채소와 떡으로 애피타이저를 시작해 메인 메뉴로 닭을 먹고, 후식으로 칼국수와 면까지 먹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풀코스 요리가 있나 싶다. 취향에 따라 감자, 만두, 수제비 등을 추가해도 괜찮다. 써 놓고 보니 전골은 물론 샤브샤브와도 닮은 점이 많다. 육수에 다양한 재료들을 한데 끓여서 소스에 찍어 먹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국물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도 닮았다. 만일 당신이 샤브샤브를 좋아한다면 닭한마리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 요리 자체가 담백하고 깔끔하기 때문에 술안주로도 부담이 없다. 소주와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다...


지난번 포스팅한 물닭갈비처럼 일부 지역에서만 알려지고 서울에는 상대적으로 드문 요리도 있는 반면, 이번 닭한마리처럼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수도권 밖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요리도 있다. 이렇게 각 요리별로 지역색이 뚜렷하기 때문에 더욱 음식을 먹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하물며 닭요리만 해도 이런데 전체 요리로 넓히면 지역별 다양성이 얼마나 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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