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 아니고요, 닭갈비가 맞습니다

[먹는 게 남는 것] 물에 빠진 닭갈비, 물닭갈비 이야기

by 챠크렐

서울에는 전국의 모든 음식이 모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에서만 유명했던 음식을 선보이는 서울 내 식당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에서는 먹기 쉽지 않은 지역 음식들이 많이 있다. 가령 물짜장은 전라북도에서는 유명하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아직 찾기 어렵고, 상추튀김 역시 광주광역시의 인기 음식이지만 서울에서 다루는 식당은 손에 꼽는다. 이런 음식들은 여전히 현지에 가야 제대로 맛볼 수 있고, 그 지역의 관광 포인트 중 하나로 많이 언급된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물닭갈비도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물닭갈비는 강원도 요리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해 인근 삼척시·동해시·정선군 등으로 퍼진 요리다. 일설에 따르면, 예전에 한창 태백 등에서 광업이 성행했을 때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목에 있는 석탄가루를 국물로 씻어내기 위해 닭갈비에 야채를 넣고 매콤하게 끓인 음식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 음식이 바로 물닭갈비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닭갈비의 일종이지만, 이들 지역 외에 있는 일반적인 닭갈비집에서는 물닭갈비를 대부분 취급하지 않는다. 비주얼만 보면 닭도리탕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데 정작 물닭갈비를 취급하는 닭도리탕 식당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사실 당연하다. 둘은 다른 음식이니까.


KakaoTalk_20260111_183236399_08.jpg 물닭갈비가 처음 나온 모습. 여기서 펄펄 끓여 야채 등을 서서히 익히면서 먹는다. 전골 느낌.


수도권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음식이다 보니 비슷한 음식들과 많이 헷갈린다. 닭갈비에 물을 많이 부어서 물닭갈비냐고 하는데 어떤 점에선 맞고 어떤 점에선 틀리다. 일단 닭고기와 양배추, 감자 등 일반적인 닭갈비에 주로 들어가는 재료에 매콤한 양념을 넣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끓인 요리는 맞다.


그러나 물닭갈비에는 반드시 향이 강한 채소가 하나씩은 꼭 들어가 국물 맛을 깊게 한다는 점에서 보통 닭갈비와는 차별화된다. 정석은 냉이를 넣는 것인데, 냉이가 봄나물이다 보니 겨울 등의 계절에는 깻잎을 대용으로 듬뿍 넣기도 한다. 냉이와 깻잎은 느낌이 좀 다르지만, 닭이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이들의 향이 어우러지면 물닭갈비 특유의 매력이 나온다. 매운맛은 좀 덜해지면서, 대신 닭육수만으로는 낼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개운하고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닭도리탕과도 차이가 뚜렷하다. 닭과 야채를 넣고 얼큰한 국물에 바글바글 끓인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국물맛도 묘하게 다르고 고기 맛도 닭도리탕과는 구분된다. 예전에 백종원이 '백종원의 3대 천왕'에서 물닭갈비를 소개했을 때 "닭도리탕은 국물은 얼큰하지만 닭은 양념이 덜 배어 맛이 심심한데, 물닭갈비는 국물은 심심한데 닭에 양념을 재워놔 맛이 다 배었다"라고 말했다. 국물이 심심하다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닭에 양념이 더 잘 밴 것은 맞다. 닭도리탕과 분명히 다른 매력을 지닌 음식이라는 의미다.


지난번 포스팅(링크)에서도 밝혔듯 나는 닭요리를 무진장 좋아한다. 마침 최근에 삼척 쪽을 갈 일이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닭갈비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기대를 잔뜩 품고 저녁을 먹으러 얼른 갔다. 네이버 지도 기준으로 삼척 시내에는 물닭갈비집이 딱 두 군데가 있는데, 이 중 한 곳인 성원닭갈비는 전에 갔던 곳이라 일부러 한 번도 안 가본 '서진닭갈비'라는 곳으로 왔다. 지역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해당 지역에도 물닭갈비집이 지천에 널린 것까지는 아닌 셈이다... 그나마 본고장인 태백 쪽에는 좀 많이 몰린 것 같긴 하다.


KakaoTalk_20260111_183236399_07.jpg 물닭갈비가 펄펄 끓는다. 우선 떡과 야채부터 익는다. 고기는 조금 더 기다리자.


각설하고, 물닭갈비 2인분에 우동사리를 추가해 주문했다. 빨간 국물에 깻잎, 콩나물, 양배추, 감자 등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 있고 닭고기와 떡도 부족하지 않다. 이런 전골류 요리가 그렇듯 바글바글 끓이면서 우선 떡, 야채 등 빨리 익는 것부터 맛을 보며 자연스럽게 전채 요리를 먹는다. 그런 다음 좀 더 끓이면 고기가 익어가는데, 이때 깻잎 등 각종 야채와 함께 국물을 살짝 끼얹어 먹으면 별미다. 아니면 반찬으로 나오는 쌈채소를 싸 먹어도 맛있다.


KakaoTalk_20260111_183236399_04.jpg 다 익은 물닭갈비에 우동사리를 넣고 한 번 더 끓여준다. 우동사리는 중간에 넣는 게 더 좋다.


한 3분의 1쯤 먹었으면 우동사리를 넣어준다. 닭갈비도 우동사리가 잘 어울리지만 물닭갈비는 더더욱 우동사리와 찰떡궁합이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에 적당히 익은 우동면을 건져서 먹으면 면에 국물이 밴 것이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그렇게 야채, 면, 고기 등을 번갈아 가서 먹다 보면 칼칼했던 목도 절로 풀리는 것 같다. 이날 전국에 날씨도 춥고 찬바람도 불어서 돌아다니는 내내 추위에 떨고 기침도 좀 나와서 목이 살짝 답답했는데, 후루룩 먹다 보니 온몸이 녹으면서 몸도 풀렸다. 이래서 광부들이 물닭갈비를 만들어 먹었구나, 싶었다.


어느 정도 다 먹었으면 닭갈비와 마찬가지로 밥을 볶는 게 정석이다. 나는 이번엔 대신 공깃밥을 먹어서 볶음밥을 따로 시키지는 않았는데, 물닭갈비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꼭 밥을 볶아먹어 볼 것을 추천한다. 물닭갈비 국물이 맛있다 보니 밥과도 잘 어울리고, 볶음밥 특유의 살짝 눌은 느낌도 별미다. 나는 몇 년 전 처음 물닭갈비를 먹었을 때 볶음밥을 먹어 봤는데 다음에 먹을 기회가 생기면 꼭 볶음밥을 먹어야겠다 싶다. 그렇게 혼자서 가뿐하게(...) 2인분을 싹싹 먹었다. 가족들, 친구들과 같이 먹고 싶은 음식인데, 그러기 쉽지 않은 음식이라 아쉬울 뿐.


KakaoTalk_20260111_183236399_02.jpg 물닭갈비도 닭갈비인지라 들어 있는 고기의 크기는 크지 않다. 하지만 국물이 잘 배어 맛만큼은 진하다!

아, 참고로 수도권에서도 물닭갈비를 맛볼 수는 있다. 경기 안산에 본점을 둔 기절초풍물닭갈비가 경기도와 서울 일부 지역에 지점을 차렸고, 인천 쪽에는 성원닭갈비(위에서 언급한 곳과는 다르다)라는 체인점이 몇 군데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는데 수도권 쪽 물닭갈비 체인점 레시피에는 냉이나 깻잎이 안 들어가고 파나 양파를 넣는다. 서울의 모 물닭갈비 식당에서 파와 양파가 들어간 물닭갈비를 한 번 먹어봤는데, 물론 그렇게 먹어도 맛은 있긴 했지만 뭔가 중요한 맛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닭도리탕과의 차별성도 좀 덜해진 것 같고. 개인적으로 냉이나 깻잎이 물닭갈비에는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물닭갈비는 강원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감히 얘기한다. 역시 제철은 냉이가 들어가는 봄철이 아닐까. 냉이 향을 물씬 맡으며 물닭갈비를 또 한 번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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