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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Jan 17. 2021

보르도에서 만난 또 다른 오타쿠

알콜 매니아와 클래식 매니아의 동행

 오타쿠,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단순 팬, 마니아를 넘어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 수준을 지칭한다. 필자는 실제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덕질도 많이 해봤고 다양한 취미를 가져봤지만, 걔 중에 술에 대한 것만큼 작정하고 덤빈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재밌는 건,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필자의 주변엔 또 다양한 분야의 오타쿠들이 있고 심지어는 이 여행 중에도 또 다른 오타쿠를 만났다.



 빌바오를 거쳐서 보르도까지 오는 동안 열흘이 넘도록 한국어로 대화를 조금도 못하다 보니, 입에 가시가 돋는 기분이 들던 중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도시들에서는 그래도 중간중간 동행도 구해서 대화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고 다녔는데. 빌바오와 보르도를 거치는 동안에는 거의 그럴 일이 없었다. 여행 내내 바에서 혼술인데, 와인바에서는 칵테일바처럼 바텐더가 놀아주지도 않으니, 카운터에 엘지 로고만 봐도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한국인 동행을 구했는데 심지어 동갑내기 친구였다. 흔히들 오는 유럽여행이겠거니 하고 만나서 서로의 호구조사를 하고 있으니, 뭔가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클래식이 좋아서 독어과를 갔고, 교환학생으로 기어코 독일을 와서 클래식 공연들을 보러 순회 중이란다. 클래식이라고는 중학교 음악교과서 이후로 접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무언가를 좋아하는 태도의 문제였을까? 서로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다르지만, 굉장히 쉽게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보르도의 Aux Quatro Coins du Vin. 와인을 자판기에 넣어놓고 글라스로 팔고 있다.

 동행하던 친구는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보러 가던 보르도를 지나가는 중이었다고 했는데, 콘서트 티켓을 정말 어렵게 구했다며 자랑했다. 유럽권의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공연들은 아직까지도 귀족문화와 같은 경향이 있어서, 몇몇 고급 콘서트 티켓들은 폐쇄적인 구조로만 티켓을 판매한다고 했다. 일종의 프라이빗 클럽처럼 기존 콘서트 브로셔가 있는 사람만이 티켓을 구매할 있고 타인 양도가 불가능한데, 정말 간혹 취소표처럼 풀리는 티켓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티켓을 구매한 사람은 이후 공연 티켓도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티켓을 정말 좋게 구한 친구는 기쁜 마음에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공연을 보러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돼서 무슨 공연이었는지는... 까먹었다.)


 나 역시도 내가 왜 이 여행을 왔는지, 보르도가 어떤 도시고 나는 무엇을 즐기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자 동행은 매우 반가워하며 내게 이 도시에서의 여행 가이드를 부탁했다. 졸지에 동행에서 처음 와본 도시의 가이드가 된 듯한, 일반적인 유럽여행 동행이었다면 조금은 귀찮은 부탁이었겠지만... 오타쿠끼리 통한 마음 때문일까, 나는 흔쾌히 보르도와 와인에 대한 나의 소박한 지식들을 공유하며 잔을 부딪혔다.



보르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이 와인 박물관 씨티 듀 뱅 (Citi du Vin)이다. 와인의 도시에 있는 와인 박물관이라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물론 와인 박물관답게, 온 나라의 와인들을 다양하게 취급하는 바틀 샵도 함께 위치해 있다. 현지에서는 컨퍼런스 홀처럼 쓰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혹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보르도라는 도시 자체도 그렇고 그 도시 안에 있는 이 박물관도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한 오타쿠 동행친구에게도 가장 강력히 추천했던 여행지다.


와인박물관 내부의 전시물들. 각종 와인들의 역사, 맛과 향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물들


와인메이커가 직접 설명해주는 와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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