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쟁이 Apr 10. 2021

땅에 떨어진 돌만 주워도 구속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들이 만들어지는 땅, 부르고뉴

 부르고뉴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들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곳의 와인들을 제대로 맛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정말 '비싸서', 좀 캐릭터가 뚜렷하게 보이고 맛있는 와인들을 맛 좀 볼라치면 10만 원이 우습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3~4만 원짜리 부르고뉴 와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는 있지만, 제대로 '부르고뉴'의 맛을 느끼기엔 택도 없다.

제대로 된 보르도 와인에는 보르도라고 적혀 있지 않고, 제대로 된 부르고뉴 와인에는 부르고뉴라고 적혀 있지 않다. 심지어는 품종에 대한 안내도 아무것도 없다. 


 부르고뉴에서도 보르도와 같이, 더 작은 지역이나 밭의 이름이 붙어야 더 상위의 와인이라고 볼 수 있다. 보르도에서는 와인의 등급이 와이너리에 부여되는 반면, 부르고뉴에서는 소분화된 '밭'들에 와인의 등급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보르도에서 'A'라는 와이너리가 포도밭을 새로 사서 와인을 만들면 그 와인은 'A' 와이너리의 등급을 따라가지만, 부르고뉴에서는 1등급 밭에서 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면 와이너리와 상관없이 1등급 와인이 되고 해당 밭의 이름이 붙는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비싼 와인을 만드는 '도멘 로마네 꽁티'의 포도밭 주변에서 돌 하나 잘못 주웠다가는 경찰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바로 그 토양 성분이 와인 맛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듯하다. 필자도 로마네 꽁티의 밭을 먼발치서 구경은 했지만, 사실 뭐가 특별하다기보다는 그 특별한 장관의 한 구간이었다. 

부르고뉴의 광활한 포도밭, 절경이다.



 보르도에서 부르고뉴로 바로 가는 기차 편은 없어서, 나는 파리를 찍고 부르고뉴의 '디종'으로 향했다. 부르고뉴 지방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인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디종이 중심 도시 역할을 한다. 와이너리 투어 또한 이곳에서 시작해서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진행된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인상은... 정말 한적한 소도시...?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호텔 지배인과도 영어가 통하지 않아 고생했다. 그래도 미식의 도시라는 별명에 맞게 허기를 때우려 대충 고른 식당조차도 부르고뉴 와인과의 페어링을 제공했고, 정말... 정말 맛있었다.

디종에 도착하자마자 즐겼던 첫 식사, 세세한 메뉴 명은 기억이 안나지만 무통의 프리미에급 부르고뉴 와인이 맛있었다는 기억만...


 예약한 와이너리 투어를 기다리다가 알게 된 사실은 디종이 머스터드로도 유명하다는 것, 사실 검색 한 번만 해봐도 알 수 있는걸, 뒤늦게 알게 된 편이었다만, 길에서 샘플로 주는 머스터드에 빵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투어를 예약하고 부르고뉴 와인을 접할 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건...

아... 씨 진짜 복잡하다...

 사실 부르고뉴 산지의 와인 표기법 자체는 복잡하지 않게 느껴졌다. 더 작은 단위의 마을이나 밭에서 난 포도만 가지고 만들었다면, 그 마을이나 밭의 이름과 등급이 와인에 붙는다. 하지만 다른 밭 (부르고뉴 안에서)의 포도가 섞였다면 '부르고뉴'라고 통칭하게 된다. 문제는 그 밭과 마을, 또 와이너리(생산자)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거다... 부르고뉴 와인 마니아들은 정말 부르고뉴 와인만 마신다고 하는데, 그 많은 생산자들과 밭의 이름들을 다 외운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못하겠던데...


부르고뉴 와인 투어 중 찍은 전경. 자세히 보면, 밭들 사이사이에 돌담과 길들로 구획이 나뉘어 있다.

 부르고뉴는 과거 지각 변동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그래서 토양의 상태가 마치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이 나있고, 걔 중에는 어패류의 화석으로 인해 석회질이 많은 구역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구역도 있다. 이러한 토양의 특성이 각 밭에서 나는 와인들의 성격을 좌지우지하고, 이 때문에 지금과 같은 부르고뉴의 등급 체계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보르도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포도 품종인 까베르네 쇼비뇽을 신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반면, 부르고뉴에서 고집하는 포도 품종인 피노누아(레드)는 악마의 선물이라고들 한다. 포도의 껍질이 얇아 탄닌이 적고, 비교적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의 와인들이 많은데 정말 섬세하고 풍부한 향을 자랑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와인에 처음 관심을 가지고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호주나 미국 와인 등이 추구하는 직관적이고 진한 스타일이 확 와 닿는다. 그러다 어느 날, 진하고 달짝지근한 와인 스타일에 질리게 되고, 좀 가벼우면서 화사한 스타일을 찾게 된다. 이때 즈음, 이 부르고뉴 와인에 폭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아... 가격은 정말 하나도 안 가볍다. 지갑만 가벼워지지... 아무튼 필자도 요 지역 여행 동안, 한국에선 비싸서 손도 못 댈 와인들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마셨던 것 같다. 이 악마의 선물이 정말 악랄한 게, 부드럽고 섬세한 만큼 다른 와인들보다 마시기가 편해서 보르도 때보다도 훨씬 훌훌 넘어간다. 덕분에 숙소에서 혼자 와인 한 병씩 가뿐히 비웠던 것 같다.

숙소에서 혼자 홀짝인 마르사네. 신의 물방울에서 봤던 빌라주 이름을 보고 골랐는데 정말 너무 취저였던 와인. 와인 잔도 없어서 맥캘란 위스키 잔에 홀짝였는데 정신 차려 보니 다 마


이전 18화 보르도여 안녕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