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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Apr 10. 2021

아주 바람직한 부녀 간의 음주 여행

위스키 증류소를 거쳐 와인 투어까지 온 부녀의술 스토리

 부르고뉴에서의 와인 투어는 디종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진행됐다. 우리 투어의 일행에는 어떤 할아버지와 중년의 백인 여성, 호주에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 그리고 나와 어느 아저씨로 이뤄져 있었다. 지금껏 참여했던 모든 알코올 투어가 그렇듯, 처음엔 서먹했던 분위기가 시음이 진행되면서 차츰 화기애애 해졌다.


픽상(Fixin)에서 들른 어느 와이너리 까브에서 시음. 이 때, 부르고뉴의 화이트 와인에 빠져버렸다. 저 뫼르소(Meursault) 때문에


 픽상(Fixin), 본 로마네(Vosne Romanee), 쥬브레 샴배르탱(Gevrey Chambertin) 등등... 익숙한 지명들을 지나 본느(Beune) 근처의 어느 마을에서 식사 겸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때, 일행 중에 마흔 언저리 즈음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과 그 아버지로 보이는 은색의 풍성한 턱수염을 자랑하는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와이너리 투어를 하게 됐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괜찮다면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영어로 버벅버벅 대화를 하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인상이 좋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함께 간 식당에서는 친절하게 부르고뉴에서는 꼬끄 뱅이라는 요리를 먹어봐야 한다며 메뉴까지 추천해 주셨다.

 요리를 고르고 와인 메뉴판을 보다 보니 온갖 부르고뉴 지역의 와인들이 글라스로 팔고 있었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쥬브레 샴배르땡을 글라스로 (생산자는 기억도 안 난다...) 고르고서 꼬끄 뱅 요리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레이철(이름이 가물가물한데...)은 원래 요리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 물론 술도! 그래서 아버지의 은퇴를 기념해서 두 분이 평소 좋아하던 술의 증류소와 양조장을 돌아다니는 여행 중이라고 했다. 참으로 멋진 부녀관계가 아닌가!!!

 

아주 잘 얻어먹은 꼬끄뱅과 와인 한잔

 그래서 부르고뉴에 오기 전에는 어딜 다녀왔는지 물어봤더니,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의 라프로익, 아드벡 등을 좋아해서 그곳에서 묵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세상에... 원래 나도 아일레이 섬이 가고 싶었는데 교통편을 헤매다가 스페이사이드로 방향을 바꾼 건데... 너무나도 부러운 부녀관계의 여행인 것 같다며 감탄했다. 당연하겠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굴과 함께 먹는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은 어마어마했다고...



 이야기를 더 하다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레이철이 자기 남편이 한동안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그래서 말을 붙여 봤다고 했다. 내가 놀라서 어디서 공부했냐 물었더니,


"Suen... Seun Chihan? (쑤엔치한?)... I cannot remeber well..."

뭐지... 이 사람 혹시 지금 한국이랑 중국이랑 헷갈리는 건가 싶어서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문득


"순천향대?"
"Yes! Right!"


아이고 세상에 순천향대가 쑤엔치한이 될 줄이야. 아니 그보다 이 여행 중에 여러 방면으로 아주 한국의 위상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이 즈음되니 안 물어볼 수가 없어서, 한국 음식은 뭐 좋아하는 거나 궁금한 거 없냐 물었더니 남편에게 들은 음식이 먹어보고 싶었단다.


"Umm... I heard about... Tang...Tang...?"

 누가 레이철의 남편 분에게 낙지 탕탕이를 사드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부르고뉴의 한가운데에서 낙지탕탕이가 먹고 싶다는 미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한참을 웃으면서 식사를 마친 뒤, 이 할아버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내 카드를 집어넣으란다. 누군가에게 사 맥이는 걸 좋아한다며, 너는 좀 많이 먹어야겠다고 말하며 웃는 할아버지 모습에서 괜히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밥 권하기는 만국 공통인 듯하다. 


이 바람직한 부녀 덕분에 내 부르고뉴 와이너리 투어는 한층 더 배부르고, 또 마냥 부럽고도 흐뭇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른 까브, 시음했던 와인들 덕에 부르고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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