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립은 쓰레기를 마주하는 일
독립을 시작한 사람이 하루에 뜯는 비닐의 개수는? 간단히 먹고 싶어 간장 계란밥을 하나 해 먹을래도 햇반 포장지를 벗겨야 하고, 참기름, 간장, 계란과 식용유 등 모두 포장을 벗겨야 한다.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는 따끈따끈한 신상이기 때문이다. 백이나 액세서리만 신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참기름도 신상 참기름이 있다. 화장품이나 가전제품만 언박싱을 하는 게 아니다. 계란 상자 하나도 언박싱을 해야 비로소 계란 12알이 나를 반긴다. 까도 까도 또 깔 것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애들은 가구 포장지다. 박스를 벗겨내면 비닐이 나오고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스티로폼이 우수수 떨어져 나오는데 이걸 모두 뜯어내서 혼자 조립할 생각을 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찌어찌 끙끙대며 조립을 마쳐도 비닐을 비롯한 쓰레기가 마구 쌓여있다. 아니, 내용물이 빠졌는데도 쓰레기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니? 오히려 무질서하게 쌓인 쓰레기들은 이 집의 문턱을 처음 넘었을 때보다 부피가 커져서 현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집에는 인간이 한 명 살고 있는데 일주일에 발생시키는 쓰레기의 부피는 그 인간의 키를 넘어선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가구의 포장지처럼 처치 곤란한 크기의 쓰레기를 내다 버릴 일은 많지 않지만, 각종 페트병과 식품 비닐과 용기는 금세 재활용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다. 거기에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까지, 가득하다 못해 아득하다.
2018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 양은 양 1kg 정도라고 한다. 세계 최대 쓰레기 배출국인 미국은 하루 3kg라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평균을 따져보면 그 정도 수치가 나올 것도 같다. 하와이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미국의 쓰레기 처리 ‘문화’를 처음 접했는데 음식물을 모든 일반 쓰레기와 같이 취급하며 기숙사라 그런 것이지 모르겠지만 재활용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우리도 그런 문화라면 아마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물건을 주문하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채워놓는 것만큼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일이다. 과대 포장을 최대한 줄이려고는 하지만 참 쉽지가 않다.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약 180세대 정도가 있는 이 오피스텔에서는 매일 같이 쓰레기를 버릴 수 있고 새벽마다 쓰레기를 가져가는 듯하다. 그런데도 매일 저녁이 되면 쓰레기장에는 박스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쓰레기가 한아름 쌓여있다. 이들은 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일층에 위치한 쓰레기장에 갖다 놓으면 이제 내 손을 떠난 것들이 되지만 그 후에는 어디로 가 어디에서 처리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나의 독립으로 인해 세상은 올해 365kg의 쓰레기를 더 품게 되었다. 재택근무로 인해 더 많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도 비닐을 벗기고 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라져 내가 사는 땅에 묻히고 내가 마시는 공기 속에 태워지고 내가 마시는 물속에 섞여 다시 내게로 온다. 그래서 독립은 내가 생산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마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