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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15. 2023

K-교육의 현장에서

1학년이 이렇게 어렵다니

카메룬에서 미국학교를 다닐 때는 숙제가 하나도 없었다. 케냐에서 영국식 학교를 다닐 때에는 만 4세에 이미 알파벳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학교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카메룬이라 그런 건지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긴 했다.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미술음악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나도 저런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 지나 아이는 영어 파닉스를 떼고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쓰고 좋아하는 책을 더듬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교과서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친구들과 신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안심했다. 그리고 이렇게 잘 다니면 교육 걱정은 특별히 초등학교 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아이는 별안간 K-교육에 적응을 시작해야 했다. 일단 학교 교과서부터 구해서 봤다. 수학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한글이 문제였다. 2학기에 이미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쓸 수 있어야 했다. 사실 수학도 문제였다. 서술형 문제들은 한글을 모르면 전혀 풀 수가 없었다. 


급하게 한글 책 2권을 떼어보았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그리고 아이는 점점 집에서 나와 공부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문제지 6페이지 푸는데 3시간씩 걸리기 시작했다. 워킹맘으로 살아온 대가를 이렇게 치르나 생각했다. 길고도 짧았던 여름의 끝에서 나는 백기를 들고 근처 눈높이 학원을 알아보았다. 1대 1로 하며 좀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글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다행히 집 근처에서 걸어갈 수 있는 센터가 있었다. 처음에는 방문교육을 생각했는데 센터장님의 설득과 뭔가 환경이 바뀌면 아이도 더 집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 반 정도 지난 지나 한글 자음과 모음을 다 익혔고 (자음과 모음 글자 이름을 2-3일 만에 익히는 걸 보고 역시 K-사교육의 파워를 느꼈다), 간판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연산이 중요하기에 일주일에 2번씩 수학공부를 하고 있고 거기에 더해 영어 철자수업도 추가하였다. 그렇게 학교 끝나면 매일 센터로 가서 2시간여를 보낸다. 구슬 나누기 하며 수학공부를 하다가 이제는 앉아서 시간 재며 연산을 해야 하는 과정이 좀 혹독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고민이 되었지만 학교에서 2-3일에 한 번씩 80문제씩 연산 숙제가 나오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다고 나를 위로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나오는 받아쓰기 급수표를 보며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더 열심히 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은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지만 언젠가 학습에서 좌절을 느끼는 순간도 올 것이고 그 순간들이 너무 빨리 찾아오지 않기를 최대한 도와주려고 한다. 내년에 무슨 학력평가가 있다는데 지금은 외국에서 온 아이라는 유예가 있지만 내년에는 아마 그것도 없을 수 있으니 그전까지 열심히 지원해 주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어서 전업으로 도와줄 수 있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많다. 왜 초등학교 저학년에 엄마들이 일을 가장 많이 그만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쉬고 있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행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다른 일을 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재택이어도 괜찮긴 한데 카메룬에서와 달리 회의들이 아이를 픽업하는 시간들과 분명 겹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 조정하면서 할 수 있을까 괜한 걱정부터 먼저 앞선다. 카메룬에서도 늘 아이가 아프면 회의가 문제였다. 


이건 비단 한국에 사는 부모들만 겪는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노벨경제학상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보면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쉽지 않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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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 듯 하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 어디서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유치원때 이미 아이 구구단을 떼고 경시대회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벌써 1학년부터 학군지로 이사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을 보면서 K-교육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중심을 잡아야 할까. 어떻게 아이를 지원해 주면 좋을까. 고민이 많아졌다. 아마 아이가 커가며 고민은 더해가리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사진: Unsplash의 Jonathan Bor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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