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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09. 2023

몇 시간을 일할 수 있을까

워라블아닌 워라블

번역일을 시작하면서 하루 일과가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 도시락을 챙기고 데일리 루틴을 하는 것에는 변화가 없지만 이제 멍 때리던 시간들에 노트북 앞에 앉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을 읽는 대신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일을 하곤 한다. 아이 학원에서도 좀 민망하긴 하지만 노트북을 종종 펼쳐 일을 하곤 한다. 프리랜서의 생명은 품질과 마감 아니겠는가. 마감을 위해서라면 조금 민망한 것도 참을 수 있다. 


하루 8시간은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하루 일과를 한번 정리해 보았다. 


- 5시: 기상 및 도시락 준비

- 5시 40분: 스트레칭하고 머리 감고 준비

- 6시: 데일리루틴 및 브런치 글쓰기 

- 6시 45분: 아이 등교 준비 및 집안 정리 

- 7시: 아이 기상 및 아침 준비 

- 8시 20분: 아이 등교 

- 8시 30분: 아침 식사 및 집안일 (청소 및 빨래)

- 9시: 업무 

- 2시(월수는 1시까지): 아이 픽업

- 2시 10분: 아이 학원 

- 3-4시: 하교 및 아이 간식 챙기기

- 4시 30분: 업무

- 6시 30분: 저녁 식사 

- 7시 30분: 아이 숙제 혹은 잘 준비 

- 9시: 아이와 함께 취침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이제 업무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 나온다. 밤에 아이 재우고 1-2시간 더하거나 아이 학원에서 일을 하면 1-2시간 정도 더해 7-8시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워라밸 아닌 워라블이다. 개인적으로는 워라밸보다는 워라블을 추구하는 편이기는 하다. 이제까지 했던 일들이 대부분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9514#home


지금은 워라블 아닌 워라블을 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과 삶이 믹스되어 버렸다. 어제도 자기 전까지 번역할 문서를 프린트해서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도 마감 때문에 브런치 글도 못쓰고 일을 했다. 아이 학원에도 일거리를 들고 가 한참을 일하다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클라이언트가 유럽 쪽이라서 메일이 저녁에 오고 간다. 어제도 아이와 만들기를 하다가 메일 답장을 쓰곤 했었다. 일과 삶의 경계는 이미 모호해졌다. 이참에 가벼운 노트북을 산건 두고두고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근해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 꿈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회사에서 일하는 것, 정말 정말 어렵다. 특히 지난번 마케터로 일할 때는 몇 번이고 번역일을 해야 하나 알아볼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매일 눈물로 일기를 쓰곤 했었다. 하지만 회사에 나가 일하고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것 등은 그리운 기억이다. 마침 오늘 문 닫은 회사 옛 동료들이 겨울 송년회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누구 엄마 아닌 내 이름 그대로 사회인으로 모임은 오랜만이라 한번 참석을 도모해보려 한다. 


물론 지금 이렇게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아이를 돌보며 어쨌든 일을 할 수 있고 나의 영어와 한글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덤이다. 다만 한순간도 늘어져 있을 시간 없이 매 순간을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생각하게 된다. 또 일이라는 것이 똑똑 잘라서 6-7시간 치만 들어오는 게 아니니 아마도 좌충우돌할 것이다. 어느 지점에서인가 분명 균형을 찾을 테지만 그전까지 견뎌낼 체력과 정신력이 있을까 숨을 깊이 들이쉬고 생각해 본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동안 아이는 나를 5번쯤 부른 것 같다. 간식에 숙제에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오늘도 일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아이 맞춤법을 봐주러 가야겠다. 



사진: Unsplash의 Ewan Rober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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