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관찰하고 입체적으로 보기

퇴사생이 사람을 보는 법

by 김시산



퇴사생은 낮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근무시간에는 회사에 머물러야 하는 직장인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낮 동안의 회사은 매우 분주하다. 미팅, 미팅, 미팅, 보고, 설득, 반려, 다시. 여러 사람과 일하고 다양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회사.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키보드 소리, 말 소리 등 여러 소란스러움에 항상 싸여있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벗어나서 돌이켜보니 그 모습들이 찻잔 속 태풍 같달까. 그러니까 직장인들이 일으키는 소란스러움이 크고 단단한 부동의 구조물인 회사 건물 안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이탈하진 않는다. 밖에서 건물을 바라봤을 땐 오히려 고요하다. 진공상태처럼 보인다. 그래서 회사로 들어갈 때마다 답답하고 산소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거 아닐까.




회사 밖도 소란스럽다. 그 모양이 조금 다를 뿐. 어떤 대상을 관찰하게 되면 그것과 결부되는 언젠가 관찰했었던 대상들이 떠오르고 연결된다. 아마도 시선을 두는 곳마다 시간을 넉넉히 할애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 지켜 보는 건 감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상은 당연히 느낌과 경험, 지식을 소환하고 사물을 복합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자주 산책을 나가는 동네의 하천에는 오리들이 참 많다. 예전에는 오리네, 발바닥 귀엽네, 뚱뚱하네, 처럼 피상적인 관찰자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저들의 생을 떠올린다. <인류, 이주, 생존>이라는 책을 보면 기술의 발달로 처음으로 동물의 이동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과학자들은 자기 지역의 제비들이 남아프리카까지 그 먼길을 날아가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본 오리들은 계절따라 수 만 킬로미터를 이동해 머물다가 다시 똑같은 거리를 돌아온, 그저 뚱뚱하기만 한 오리가 아니라 상상을 자극하는 탐험가가 된다.




오리만큼은 긴거리는 아니지만, 출근할 곳이 정해져있지 않으니 매일 매일 머물 곳을 찾고 옮겨 다닌다. 머물기에 적절한 카페를 찾는 일은 ‘카공 카페’를 검색하면서 시작된다. 카공 카페란 콘센트, 넓은 테이블 등 머물며 작업하기 좋은 공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학생, 갭이어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대부분 오래 머물며 모두가 다른 목소리의 크기와 속도, 자세로 얘기는 곳이다 보니 듣기 싫어도 듣게 되고 궁금해진다. 어떤 사연이 있을지, 지금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영역의 고민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감상, 이라고 해두자. 다음 미팅에 가기 전 한숨 돌리며 택시 기사님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영업사원, 챗gpt로 자소서를 쓰면서 디지털 디톡스를 할 수 있는 숙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학생들. 귀에 잡히는 일화들.


비슷하게 <SBS 스페셜 갱단과의 전쟁>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한 마약계 형사가 숙소에 머물고 있는 갱단을 검거하기 위해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발신인은 아들. 묻는다. “집에 언제 올거야~”, 형사이지만 아빠인 그는 다정하게 대답한다. “아빠 범인 잡으러 가야 해”, 다시 아들이 해맑게 말한다. “꼭 잡아 파이팅!!”.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여러 장면과 범죄자의 뻔뻔함을 제치고 이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직업은 석상을 다듬듯이 오랜 시간을 들여 기대값을 붙이고 덧대고 고치면서 규정된 것이기 때문에, 직업명만으로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택시를 많이 탄다고 하고 자신을 영업직이라고 소개 하면 ‘아~’라며 납득의 표현을 한다. 사무실보다는 주로 밖에 머무는 특성을 알기 때문이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고유성을 가리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영업직, 대학생, 형사로 퉁쳐버리면 직업의 외피를 벗기고 그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한다.


카페에서 영업사원은 ‘난 택시를 많이 타는데 탈 때마다 매번 달라, 매번 분위기가 다른 음악을 듣는 기분 같다’며 전한 이야기는 이것이다. 본인이 탔던 택시의 기사님이 노인 분이셨는데 그 택시가 얼마 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노인 보호구역으로 바뀐 길을 지났고, 기사님께서는 본인이 보호 받아야 할 대상임을 고시하는 도로를 보니 기분이 서글프다고 이야기를 하신 거였다. 서글픔. 어떤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함을 내포하고 있어서, 어쩌면 그건 내 살을 조금 파낸 곳에 자리를 잡는 감정이라서.


수동변속기와 클러치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길 요구받던 시절, 지금은 사라진 고난이도의 코스를 무사히 통과해 면허증을 따셨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한낮에. 그리고 현장에 뛰어 들었고 그렇게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면허증을 따던 자신의 나이를 가진 젊은이를 태운 택시를 여전히 운전하고 계신 기사님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세심하게 듣는 영업사원을 떠올리면, 그가 반복되는 패턴 속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경로를 찾은 것만 같다. 영업사원이자 한 개인으로써.




‘어떤 소란은 숲을 넓히기도 한다’는 문장을 어느 글에서 보았는데 출처를 찾고 싶어 책을 훑어보고 검색을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을 ‘회사 밖에 머물며 경험한’ 이라고 풀어서 읽는다. 회사 생활에 비하면 바깥에 머문 시간은 아주 작고 미미하다. 하지만 내가 겪는 소란은 내 삶을 더 빠르게 풍성하게, 무성하게 키워주고 있다. 난 이 소란이 너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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