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너무 잘~ 누리고 있는 것

나다운 삶

by 김시산

하나. 햇빛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의 모든 창을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바람에 부딪힌 나뭇잎들이 만드는 고유의 소리, 새들의 지저귐, 멀리서 점점 작아지는 차량의 소리들이 들린다. 안과 바깥의 경계를 트면 이러한 소리들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일종의 의식이자 신호탄인데, 몸은 예닐곱시간 동안 실내에서 잠에 익숙해진 상태일테니 기꺼이 하루의 일정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선 바깥의 생동감으로 몸을 깨워야 한다는 그런 발상. 이런 연유로 창문을 열고 닫고 해서 그런지 글을 쓰다가 길을 잃거나 막히면 괜히 베란다로 가서 창문이 닫혔는지 확인해본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 백지 상태일 때도 잠시 다녀왔다. 앞길을 열어주소서.


베란다를 열면 잠을 자고 있던 고양이들도 베란다 옆에 위치한 캣타워에 한칸씩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바깥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물들을 장난감 보듯이 한참을 관찰한다. 베란다의 지척까지 다가오는 까치가 있는데 그 친구와도 인사 인지 말싸움인지 모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고양이는 움직이는 무엇을 관찰하면 스트레스가 감소한다고 해서 1층에서 살고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만용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하고 일상적인 태도라고 오랫동안 믿어왔지만, 가끔 바깥 풍경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면 괜히 이해라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진다. 어떤게 재밌는거야? 다리 안 결려? 손인가?


아침에 창을 여는 건 회사를 다닐 때도 꼬박 해왔는데, 퇴사 후에는 햇볕 지켜 보기가 추가됐다. 원래는 직장인의 아침이 그렇듯 일어나서 그대로 욕실로 향하고 챙겨입고 물 한모금 하고 현관문을 나섰지만 그런 과정들을 생략할 수 있는 지금, 햇볕 보기를 루틴에 넣었다. 우리집 옆에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몇 그루와 벤치, 보도블럭, 흙이 있는 작은 쉼터가 있다. 소파에 앉아 베란다를 통해 작은 쉼터에 떨어지는 햇볕과 견고해보이는 나무 그늘을 지켜본다. 매일 보는 풍경인데도 지겹지가 않아서 오히려 신기하다. 고양이들이 매일 바깥을 보는 이유가 궁금한 것도 나의 신기함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서인가.


빛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세심하게 다루는 작가는 백수린이지 않을까 그의 소설을 몇 편 접하면서 빛이 가져다 주는 심상에 대해서 곱씹어보게 됐다.


“커튼을 치지 않은 거실 유리창 너머로 고요함이 감도는 먹빛이 가득 들어찬 게 보였다”(아주 환한 날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며 얼마나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지 마침내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미래와 끝에 대해서 대비할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헛되게 믿으면서.


연노란색 하늘과 부드러운 윤곽을 지닌 산등성이가 맞닿은 부분을 따라 아주 가느다란 선이 생기고 그것을 우리가 발견할 때까지”(아주 환한 날)


그의 글에서 빈틈을 채우는 빛에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감정은 인물이 놓인 상황에 따라 달리 느껴질 테고. 요즘은 햇볕을 열심히 쫓아다닌다. 한낮의 햇볕 아래에서 산책하는 시간을 꼭 마련하고, 볕이 잘 드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풍경을 보면서 글을 쓴다. 그럴 때 보이는 풍경들은 매우 선명하다. 광각이 밝다는 물리적 의미와 함께 그간 놓쳤거나 혹은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다는 무의식에서 의도적으로 생략했던 모습들이 보인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서울의 건물들이 이렇게 또렷했던가, 저 건물 안에는 무슨 일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으레 바쁜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도시가 정말로 바쁜 이유는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다 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무엇들이 눈에 보인다는 것, 요즘 학생들은 신발 가방을 따로 들고 다니지 않고 궁금하고 상상하게 되고 추측해보고. 빛은 은연 중에 그어놓은 경계선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둘. 책


책을 사서 볼 수 있다는 게 직장인이라 좋았던 점 중 하나였다. 읽고 싶은 책을 빌리기 위해 키보다 높은 책장 사이에 발을 들이고, 헤매다가 흥미를 돋우는 다른 책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앉아 내리 읽어 간 기억이 있는 도서관은 늘 설렘의 공간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생기는 질문은 곧장 페이지에 메모로 남기고, 발이 턱 걸리는 문장에는 마음껏 밑줄을 긋고, 언젠가 문득 생각을 스쳤을 때 쉽게 꺼내보려면 구매해서 가지는 게 훨씬 좋다, 는 걸 모두 공감할 거라 믿는다. 게다가 새 책이 가진 빳빳한 종이의 질감은 항상 반갑고 주고, 갓 구운 빵냄새처럼 어쩌면 잉크 냄새가 아직 묻어있는 거 같아 상쾌한 기분 마저 든다.


읽고 싶은 책은 책을 읽을수록 자꾸 생기는 법이다. 독서 습관에 대해 누가 물으면 일단 1권을 완독하는게 중요하다고 늘 말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 구입한 책들로 책장이 가득 찬 상황. 세로로 다 꽂을 수가 없어서 책장의 빈틈이 있다면 테트리스 하듯이 채워넣고 있다. 책장 위 역시 진작에 북앤드를 마련해 촘촘하게 활용하고 있다. 원래는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분류해 놓았었다. 세계문학, 한국문학, 사회과학서, 시집, 인문학.. 인파가 밀집한 광장이 자발적인 시민의식과 치열한 질서 유지 노력이 없다면 바로 혼란에 빠지는 것처럼 자리가 부족하다보니 의식이 없는 책들이야 오죽할까. 라고 책 탓을 하는게 어이가 없다. 나의 외면과 회피의 산물이다. 1/3은 제 자리에 꽂혀 있지만 2/3는 아무 빈자리에나 들어가 있지 않을까.

퇴사를 하면 책장을 제대로 정리하려고 했었다. 한낮에 여유롭게 바람을 맞으면서 쌓인 먼지도 꼼꼼하게 닦아 내고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다시 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엑셀로 분류표를 만드는 시간을 계획했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뒤에는 책장이 거품을 물듯 아슬하게 책을 움켜쥐고 있다. 뒤통수가 약간 따갑고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책장 정리는 책을 꺼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운 종목이다. 그래서 빤히 책장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큰 수고 없이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책장 정리 대행 서비스를 런칭해서 운영하면 분명히 수요가 있을 것이다, 라고 옆길로 수월하게 빠지곤 한다.


출판량이 독서량을 추월한 통계가 있고 거시적인 수치가 아니더라도 지하철만 타더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저런 서비스는 아마도 수요는 있겠지만 흥행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그렇지만 너무 힘드니까 이제 책을 그만 사고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생각으로 또 한나절을 보낸다. 책장 앞에서. 책장의 시선이 약간 따갑고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퇴사 후 카공 카페만큼 도서관을 자주 간다. 운이 좋게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집 근처에 여러 곳이 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갭이어에겐 최적의 조건이라 늘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한다. 책이 비치되어 있는 열람실 구석에 있는 책상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살피면 도서관만이 가지고 있는 고집스러운 냄새가 난다. 대학생 때 시험기간에 종일 머물던 학교 도서관 냄새 같기도 하고, 고향의 도서관에서 맡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도서관만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면 괜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자세를 잡게 된다. 그러니까 도서관은 그런 힘이 있다. 책은 느린 매체이고, ‘읽기’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이런 분위기 안에 있으니 자연스레 나도 침착하게 무언가를 해볼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닐까. 책도 열심히 빌려보고 있다. 포스트 잇을 붙이거나 밑줄을 그을 수 없는 대신에 손으로 옮겨 적고 사진을 찍어서 남긴다.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그래서 더 능동적인 방식이다. 독서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서 가능하다. 그리고 원래 고생한 여행이 기억에 남는 법이니, 종국에는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햇빛과 책, 퇴사 후에 가장 잘 누리고 있는 대상들이다. 여전히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고, 그 과정이 곧 나다운 삶을 꾸리는 경로와 일치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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