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던 입맛을 되찾았어요

퇴사자의 입맛 이야기

by 김시산

마지막 출근날은 벚꽃이 가장 만발했을 때였다. 그날 아침 집 앞 울창한 벚꽃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아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퇴사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리의 세계에선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 속도 역시 동일하지만, 일상에서는 다르게 느끼지 않나. 감정이라는 변수가 있으니까. 잉여와 결핍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르게 느끼는데, 감정이 이를 만든다. 붙잡힐까 부리나케 달려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왜 내 시간만 느릴까 내가 보고 있는 장면에서 나만 툭 떼어낸 것만 같은 순간들. 또 ‘순간’ 대신 모먼트라는 말을 쓰고, 가장 좋았던 모먼트를 경험한 곳 혹은 사물을 ‘인생OO’ 이라는 말을 붙이는데, 우리는 일상의 어느 지점을 길게 늘리거나 혹은 가능한 느리게 통과하고 싶어한다.


회사는 서랍 같은 곳이다. 정해진 틀에 맞춰 내용물을 채우는 것처럼 정주의 공간과 합의된 시간 개념으로 만들어진 틀 안에 나를 맞춰서 넣는다. 그리고 열고 닫고를 반복한다. 이처럼 반복된 운동성은 예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의 범주 내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퇴사를 하게 되면 이 틀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시간이 손에 잡히지 않아, 빠르게 흐를 것만 같았다. 모래시계가 깨지면 모래가 산산이 흩어져버리는 것처럼. 지난 퇴사 후의 시간을 돌아보면 실제로 빠르게 지났음을 체감하게 된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은 호들갑을 떨게 된다.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면 안되니까 의지를 채비하고 책상에 앉고 운동을 한다. 그리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 오늘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어 준다. 나는 캘린더 앱과 그냥 다이어리, 일기, 독서 일기를 쓰고 있다. 캘린더 앱에는 시간순으로 오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적혀 있다. 시간 또는 분 단위로 머문 장소, 무엇을 했는지, 먹은 건 뭔지 등. 이전 기록을 들춰봤는데, 회사를 다닐 때와 퇴사한 지금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차이점을 발견하게 됐다.


입맛.

1년을 X축에 두고 월 단위로 나의 컨디션 점수를 찍은 다음 곡선으로 그려 보면 나의 등락이 뚜렷하게 보인다. 떨어지는 요인은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뚜렷하고 꾸준하게 반복되는 요인은 입맛이다. 사전에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맛에 대한 감각’이라고 돼있다. 이 맛에 대한 감각을 잃는 시기가 있는데 초봄과 초여름이다. 봄에는 왜 입맛을 잃는지 아직 불가사의한 반면에 여름은 그 이유가 분명하다. 가만히 있어도 물 속을 부유하는 기분, 팔과 다리를 쉼 없이 움직여서 기운을 다 소진하게 만드는 습도. 열에너지를 기계를 돌리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능이 없는 사람이라서 발생한 열은 고스란히 몸안에 상처를 내면서 돈다. 여름의 더위가 이어지는 서너달동안 몸이 내내 시끄러운 상태인 것. 적당한 운동과 노동은 밥을 꿀맛으로 만들어 두세공기를 뚝딱하게 만들지만 입에 단내가 나는 중노동이 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저 쉬고 싶어질 뿐.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먹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생략하거나 우유나 빵처럼 많은 저작 작용이 필요하지 않은 ‘에너지원’으로 대체한다. 이런 현상이 매년 여름 반복되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한다. 너무 고달픈 반복.


“음 곧 입맛이 없어지겠네, 하…”


그런데 달라졌다. 캘린더 앱의 기록에는 매일 세번의 식사가 적혀 있고 시간과 메뉴도 볼 수 있다. 봄을 지나 여름에 진입한 지금, 작년보다 더 진하고 가혹하게 느껴지는 장마기간임에도 예외없이 식사를 잘 챙기고 있다.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기지고 음식이 당겨서. 내겐 너무 특이한 현상이랄까. 작년과 올해, 유일한 차이가 ‘퇴사’다. 여전히 달리기에 여념이 없고 수면 시간도 비슷하며, 특히 매일 아침에 확인을 하는 체중 역시 변화가 없어서 신기할 정도. 퇴사 때문에 달라진건가 라고 생각하면 너무 비약일까. 삶이 소설보다 덜 인과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툭 튀어나온 퇴사라는 사실로 전개가 달라지는 것이 영 어색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퇴사는 나의 되살아난 입맛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가장 쉬운 가설은 ‘더위를 체감할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를 들 수 있다. 출근을 위해 햇빛 아래를 걷는 일, 찜통 같은 야외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일, 점심 식사를 위해 바깥을 돌아다니는 일이 모두 생략된 삶이라 이전보다 더위를 덜 마주친다. 여름날 출근길 끝에 책상에 앉으면 멍한 시간을 꼭 가져야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 가설은 확실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 안하는 삶 만세.


예상해볼 수 있는 다른 가설은 ‘나 자신이 더 중요해져서’ 이다. 서랍 같은 회사의 틀 속성은 제약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성벽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안에 있으면 보호 받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일, 정해진 식사 시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아니 이것이 전부겠다, 나의 신체가 지속 가능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 배면에는 내가 잠시 이탈하거나 조금은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여전히 난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나의 신체는 유지된다는 안정감도 있다.


반면, 성벽에서 이탈한 나는 나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그 방식은 아무래도 익숙했던 회사의 방식을 전용하게 됐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일할 장소를 택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마무리하는 그런 방식. 이전에å는 이끌려갔다면 이제는 마음 속에서 돋아난 에너지가 움직이게 한다. 아마 더위가 내 몸에 부딪혀서 만든 그 열에너지가 드디어 나라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에너지로 전환되고 있는 것 아닐까. 전에 없던 입맛이 마구 생겨서라기 보다는 내가 먹는 이 음식이 나를 이룬다는 생각, 잘 먹는 것이 나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이 나를 움직인다.


오늘은 최근에 장을 본 제주한돈문어두루치기를 볶아서 먹었다. 마감 직전 세일 특가라고 해서 줄을 서서 구매했지만 막상 가격표를 받고 보니 비싸서 속았나? 싶었던 두루치기. 먹으니 몹시 맛있었고 전혀 돈이 아깝지 않은 식사였다. 그렇게 오늘도 한끼를 먹었다. 잘 먹었다보단 배불리 먹었다 보단, 먹었다 나를 굶기지 않고. 에 방점을 찍고 싶다. 시간은 여전히 잘 가고 있고 나는 그 시간을 나의 방식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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