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정말 괜찮은데

갭이어, 구조적 혼밥러가 된 퇴사생

by 김시산

올해 초 국내 일간지에서 유엔에서 발행하는 <2025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혼밥에 관해 다룬 적이 있다. 한국인의 혼밥 횟수가 일주일 14끼 중 10끼가 혼밥이고 순위로 따지자면 세계 16위라고. 주변에서 혼밥러들을 발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게 의아하게 다가온 것은 함께 식사한 횟수와 외로움의 상관관계였다. 함께 식사한 횟수가 적을수록 외로움을 느낀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


보고서에서 분석한대로 거시적인 시각에서는 소득 수준, 실업률 등 공상의 수준으로 여겨지는 지표들이 탄탄한 근거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정책의 입안까지 연결되길 기대할 것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개인적 차원에서는 분명하게 의아했던 점이 있다. 나는 조금 더 생활에 밀착된 경험에서, 다같이 하는 식사보다 혼밥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가 분명했고 그 경험 속에서 외로움이 차지하는 크기도 작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대학생때까지 혼밥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공강 시간에 밥친구를 찾아 헤맸고 없으면 과자와 같은 군것질로 도서관에서 떼우곤 했다. 식당에서 혼자하는 식사는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마주친 친구가 왜 혼자 먹어?라는 친근한 물음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고,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안쓰럽게 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의 나는 외로워보이는 사람으로 보이는게 싫었다. 난 전혀 외롭지 않은데 남들이 날 외롭게 본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명할 수도 없으니, 애초에 그런 ‘오해’를 만들지 않는 수 밖에. 이건 사회초년생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런데, 보고서에도 약간의 오해가 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꼈다고 응답한 건데, 여기에는 이미 어떤 전제 위에서 올려져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식사가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행위 이상으로 타인과 교감 하는 시간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혼자 식사하는 ‘나’는 학습된 외로움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것도 외로움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외로움에 휩싸인다는 점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혼밥을 해야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팀이 있고 혹은 식사 시간을 활용해 업무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식사 자리가 늘 마련돼있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자 스물스물 다른 생각이 웃자라기 시작했다. ‘밥만큼은 편하게 먹고 싶다. 타인과의 교류는 외로움을 덜어줄 지 모르지만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장인의 영원한 지상 과제인 식사 메뉴부터 장소를 고르는 일, 그리고 휴지를 깔고 수저를 정갈하게 놓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본격 시작이다. 대화가 발생할 수 있게 시의적절한 소재를 찾아서 제시해야 한다. 꽝을 뽑아서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적절한 리액션도 매우 중요하다. 식사 메이트의 기분이나 대화의 집중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 여기서 특이점. 여기까지 문장을 이어오는데 ‘- 한다’ 라는 서술어가 많이 붙었다. 대부분 의무적이라는 것.



혼밥은 이런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타인으로 받는 오해가 불러오는 난감함보다는 혼밥의 홀가분함이 주는 만족감이 훨씬 컸다. 그래서 혼밥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게 됐다. 회사에 있을 때도 대부분 함께하는 식사여서 이따금 기회를 봐서 혼밥을 하곤 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식사 후 산책까지 편히 누릴 수 있어서 홀가분했다. 회사는 식사 뿐만 아니라 사무실 자리부터 미팅까지 일상적으로 늘 외부 자극이 많은 곳이라서 혼밥은 한 숨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퇴사한 지금은 혼밥이 일상이다. 자발적 혼밥러에서 이젠 구조적 혼밥러가 되었다. 적응 단계를 넘어 이젠 스스로 원숙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혼밥의 장점을 상기하며 식사 시간을 맞이 하지 않고, 가끔은 함께 식사 할 때 좋았던 점을 다시금 떠올려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좋은 점에 외로움 해소가 들어있지 않다. 나아가 사람이 혼자 하는 행위에 ‘외로울 것’이라는 추측이 붙는 행위도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으레 하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모든 행위 혹은 사사건건 사회적 관계망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살면서 여러 시간, 공간, 사람을 지나치게 되는데 어디서 연결되고 어디서 끊을지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다. 혼자 하는 식사 역시 주체적인 결정이다. 사회적인 동물이 채워야 할 사회성 용량은 스스로가 연결과 비연결을 택하면서 보충하는 것이다. 혼자하는 식사와 러닝 크루 참여 조합도 충분히 사회적인 동물이다. 따라서 ‘외로울 수 있다’는 염려 어린 시선은 정말 따뜻하지만 ‘당연히’ 란 편견은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운 시각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편견들이 실체가 없는 외로움을 강화하기도 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혼밥 충분히 괜찮다. 다만 혼밥이 어떤 사회적 아젠다에서 결핍과 부족의 표상일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중요하다. 면밀히 관찰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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