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의 시간관리 방법

타임 박싱(time boxing) - 토스에서 배운 것

by 김시산

퇴사한지 꼭 한달이 지났다. 지난 한달만큼 시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있을까. 퇴사생에겐 월급이 들어오지 않지만 시간은 매일 24시간씩 꼬박꼬박 입금된다. 월급이 생활에 아주 중요한 자본금이 되어 주듯이 이를 대체해 들어오는 시간은 그에 상응하는 무게감을 가진다. 그러니 잘 써야 한다는 책무가 느껴질 수 밖에.



‘시간 잘 쓴다’는 게 뭘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오롯이 나의 모든 시간을 양손에 올려놓고 어떻게 쓸 지 고민한 일은 설렌만큼 부담도 컸다. 재테크처럼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굴려야 하니까. 지나가면 다시 쓸 수 없는 일회용 우주선 같달까. 다른 사람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찾아 보듯이 갭이어를 가진 분들의 글과 책 그리고 유튜브를 검색해서 봤다. 어떻게 시간을 썼는지 알고 싶었고 경험과 감상이 어땠는지도 궁금했다.


의욕적으로 배움에 몰두 하신 분들, 일부러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속성의 노동에 전념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사무직에 종사하시다가 퇴사 후에는 공사현장이나 택배일을 통해 또다른 경험을 쌓으셨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통해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신 분들도 있었고,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련없이 휴식시간을 가지신 분들도 많았다. 일화들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또 읽었다. 이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틈틈이 메모해가면서.



그러다 문득 스스로가 낯선 기분이 들어 주변을 살펴봤다. 책상에 앉아 타인의 경험을, 가급적 많이 보고 참고하려는 이 모습은 오히려 퇴사하면서 극복하고 싶었던 내 습관이었다,는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다수가 선택하는 방법은 가장 안전한 정답과 가까우니 그 선택을 따르려는 평균주의. 대학과 취업, 직장인으로서 생활까지 십여년을 나를 작동시킨 환경이었으니 얼마나 집요할까. 또 적당히 성공해왔으니 작동 방식에 대한 신뢰가 내심에 켜켜이 쌓여있었을테고 자율주행처럼 움직였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제동이 걸렸다는 것. 다짐을 반복해왔고 실현시킬 의지를 쌓고 쌓았더니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한 것 아닐까.



생각은 다시 퇴사 결심 시점으로 돌아갔다. 한 때 애정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더이상 몰입하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무엇들이 보였다. ‘시간을 잘 쓴다’는 건 ‘난 이걸 해야 해’라고 결심한 무엇에 에너지를 쏟아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시간을 펼치는 일이다. 매일매일 시간이라는 슬롯에 반복적으로 어떤 행위를 투입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게 만드는 과정, 그렇게 해서 한 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어진 몸을 가지기까지.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새로운 신체를 가지는 일과 비슷하다.



내가 갖출 신체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신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달리기 습관은 신발을 신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하는데, 글도 비슷하다. 시작하는게 중요하고 글쓰기의 시작은 책상에 앉기다. 일단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소위 엉덩력이라고 하는 건데 배기고 찌뿌듯해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한 줄이라도 쓰게 된다. 하루키가 그랬던가, 글을 쓰는 방법은 ‘우선 한 줄을 쓴다’라고. 한줄을 쓰면 그 한 줄이 두번째 줄을 쓰게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엉덩력을 발휘하는 시간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



한 줄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일어섰는데, 내 손에는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 봉투가 들려있다. 또 어느 날에는 거실 바닥의 먼지가 유난히 눈에 들어와 청소기를 쥐고 있기도 하고 힘겹게 빨래를 뱉어내고 있는 빨래통을 도와주기 위해 세탁실에 들어가기도 한다.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해야 할 것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올런지도.



이럴 때 일수록 생각할 기회를 줄이고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넛지가 필요하다. 어떤 신호가 있으면 바로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시스템. 타임 박싱을 활용하고 있다. 이 개념에 대한 책이 있고 일론 머스크의 시간 관리 방식으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 방법을 토스에서 일하면서 배우게 됐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1.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 한다

2. 할 일 별 예상 소요 시간을 확인한다

3. 스케쥴표, 다이어리 등에 할 일(소요시간)을 배치한다

4. 시간을 지켜 할 일을 처리한다.


간단해보이는 이 방식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일을 마무리 못했더라도 종료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타임박싱을 정했다면 3~4시까지 계획한 양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멈추고 4시부터는 산문 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토스에서는 매우 중요한 2시간 짜리 회의를 진행하다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했더라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종료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회사의 업무를 시간에 맞춘다는 게 영 어색하고 오히려 주객전도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산재해 있는 중요한 모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슬롯에 잘 집어 넣는게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타임박싱 샘플.jpg



타임 박싱을 잘 활용하려면, 할 일에 맞는 시간 배정을 잘 해야 하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과감하게 멈출 줄 아는 강단이 필요하다. 글쓰기가 너무 중요한만큼 집을 정리하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역시 신경을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 타임 박싱한 알림이 오면 알림 따라 몸을 움직인다. 글을 쓰다가 빨래를 하고 식사를 하고.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싣고 코너마다 정해진 과업을 수행하는 형태. 생각의 기회는 대폭 줄이고 행동의 빈도를 빠르게 늘리는 방법이다.


나는 데일리 타임박싱의 기본 골격을 이렇게 짜고 있다. 앱은 구글 캘린더를 사용하고 있다.
글쓰기 신체를 갖기 위해서

읽기 : 신문(1시간), 책(2시간)

쓰기 : 시 쓰기(3시간), 산문(2시간)

그외 : 운동, 식사 등이 있다.


나 같은 퇴사자나 프리랜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이지만 이것은 무엇이든 안할 수도 있고 또 아무거나 '막' 할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시간이란 자원이 손쉽게 낭비되기도 한다. 나 역시 퇴사 후 2주 동안 그런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반대로 오늘이 생산적이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사용한 시간에 따라 누적된 무언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으면 된다. 그 누적하기를 타임박싱이 도와준다. 자율성에 수동성을 더한 하이브리드 컨베이어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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