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지 않는 생활

"많이 먹지 않아도 돼, 훨씬 좋아"

by 김시산

퇴사 후 식사비가 정말 많이 줄었다. 월급이 없어졌으니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퍽 줄어든 식사의 양 때문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내가 생각해도 많이 먹었다. 이건 비밀인데 직장인의 몸에는 아주 미세한 폭탄이 들어있다. 음식을 남기면 펑! 하고 터져버리는 폭탄. 나의 위장의 크기나 소화 능력과는 상관 없이 식당에서 제공하는 1인분은 싹 비워야 하는 미션, 직장인이라면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고 해서 저녁을 건너뛸까.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식사가 중반을 넘어서면 다시 배달앱을 켜서 디저트를 주문했다. 흐름이 끊기면 안되니까. 먹는 건 기세니까.




왜 그렇게 많이 먹었을까, 늘 더부룩해서 고생을 했으면서. 돌이켜보면 고육지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많이 먹는게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 이라니. 피부에 달라 붙는 감정은 분명히 내 것이지만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설명하려고 하면 더 깊숙하게 숨어버리는 것도 같고. 그럴 때 고전의 힘을 빌리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를 읽다가 턱-하고 걸린 적이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은 개인에게 독립심과 함께 ‘견딜 수 없는 불안’을 유발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면 그 관계로 도피 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직장인의 나는 판단을 계속 요구 받았다. 정보와 경험으로 어떤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 시간을 들여 잘 해야 하는 일,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판단에는 당연히 책임이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니고. 정성을 들인 일에 대한 책임. 열과 성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는 양해가 되지 않는, 균형을 잃어버린 관계성은 불안을 자아내곤 했다. 과연 최선의 판단을 한 걸까, 만약 손해를 끼치면 어떡하지. 동료들에게 조언을 듣지만 ‘과연’과 ‘만약’이 붙는 여러 경우의 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었으니까.


그래서 내 머리는 항상 운행하고 있거나 아니면 공회전을 하고 있는 버스 같았다. 예측하고 결과를 감내하고 다시 실행하는, 반복되는 공정. 최대치를 가동하면서 피로가 계속 쌓이는 상태. 그래서 내 속에는 휴차를 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다. 누군가의 선택을 그대로 따르고 싶은 마음. 그게 배달앱으로, 식사량으로 나타난 것이고.




요즘은 배 불리 먹었다 대신 잘 먹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식사를 하고 있다. 차오른 배에 한숨을 쉬며 밍기적거리는게 아니라 바로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나 개수대에 그릇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식사. 작은공기 햇반과 콩나물을 합쳐 만든 콩나물밥과 미니돈까스 5개, 양념 소불고기 조금과 달걀국, 이번 주 식단이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식사비를 꽉 채워 음식을 고르던 때와 다르게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메뉴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면서 준비하기에 성가시지 않은 음식. 역량의 최대치를 쓰면서 용량 이상의 밥을 먹는 생활이 불안의 산물이라면, 최소한의 식사로 만족하는 삶은 단단하고 두터워진 마음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퇴사 이후 생활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길 위를 걷는 기분이다. 막연하고 정처 없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가 많은 시간. 그래서 “많이 먹지 않아도 돼, 훨씬 좋아” 라고 말하는 나를 볼 때마다 잘 걷고 있구나 란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걷는 동안 나는 조금만 먹어도 잘 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니까. 앞으로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저 멀리에 있는 뚜렷한 내가 온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앞으로 걷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대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아침 식단 : 사과1알, 식빵 1장. 가볍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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