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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Oct 08. 2022

좋아하는 일을 계속 만들기

열한 살 딸은 좋아하는 대상이 계속 바뀐다. 한동안 트로트에 빠져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나태주라는 가수에게 빠져있었다. 태권 트롯을 보여주는 모습에 자기도 커서 나태주가 되겠다며 태권도를 열심히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하던 아이였다. 아이를 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사람이 얼마나 빛이 나는지 알게 됐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할 때 나태주가 참여하는 ‘트롯 페스타’ 공연을 함께 다녀왔다. 공연을 보는 중간중간 옆 자리에 앉은 아이를 힐끔거렸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엔 태주 날개(팬클럽 이름)가 그려져 있는 망토를 위풍당당하게 두르고.

     

아이의 덕질을 바라보면서 나의 무미건조했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공부도, 노는 것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 딱히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자주 울적해 보이던 엄마의 표정을, IMF로 힘들어하던 아빠의 마음을,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며 날카로워진 언니의 말투를 내 작은 마음 안에 담아두느라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엄마, 나는 이제 여한이 없어. 내가 나태주를 직접 보다니 말이야. “

열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여한이 없어지는 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을 보듬고, 사랑해주는 마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잘 보이기 위해서 애쓰게 되고,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      


출처 : 픽사베이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에서 정지혜 작가는 ‘덕질이 삶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고 적었다.      

작가는 BTS를 덕질하면서 관심도 없던 빌보드와 그래미 시상식을 생중계로 챙겨 보고,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으며, RM이 읽었다는 이유로 과학소설에도 손을 뻗게 되었다고. 게다가 정국이 즐겨 입는 쇼핑몰에서 개량 한복을 주문해 입고, 시도해 본 적 없는 밝은 색깔로 염색도 했다고 말이다. 


그건 분명, 단순히 ‘덕질’이라는 말로 끝낼 수 없는 사랑 같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애정만큼 자신에게 되돌아온 사랑이 아닐까. 그 사랑이 분명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이 되어 줄 거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다. 

"뭐가 젤 좋았어?"

"뭐가 젤 좋긴. 다 좋았지. 그런 질문이 어딨어.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 좋은 거지."  

  

아이의 말에 다시 한번 배웠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 좋은 것.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만으로 설레고, 잘하고 싶어 나의 최선을 다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나는 ‘나의 하루하루를 덕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삶에 빠지면 그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어서, 그 하루 동안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노력하지 않을까. 


밀리카 작가의 『작고 귀여운 나의 행복』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다루는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제가 그 어느 것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건 
단박에 변화되는 것이나 순간적으로 일희일비하는 것보다는, 
"내일은 잘 될 거라 믿어!"라며
현실에서 도피해버리는 대책 없는 오늘보다는, 
"오늘 하루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노력하는 오늘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 만이라고 하지만, 그건 삶 전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 누구도 어제를 다시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미리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니까 말이죠. 
- 『작고 귀여운 나의 행복』, 밀리카, 부크럼, 2020          


트로트에 시들해진 아이는 최근 아이돌 댄스에 빠져 있다.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방송댄스를 수강하고, 매일 집에서도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트로트에 빠져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사랑이다. 아이돌이 되고 싶다며 옷차림과 화장을 흉내 내기도 한다.      


이제 열한 살, 아이는 자라면서 수없이 덕질의 대상이 바뀌겠지만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앞으로 아이가 하는 모든 덕질을 무조건 응원하겠노라고.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좋아하는 일을 찾았을 때 머뭇거리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게 오래오래 나의 하루를 사랑해 가는 일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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