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기가 막힌 이야기라면서 오래전에 해준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당구장에 갔는데, 사장이 당구공으로 멕시칸 직원의 머리를 마구 내려쳤다고 한다. 그것을 본 남편이 “그러다가 죽겠어요”라고 했더니, “얘 불법체류자라서 괜찮아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불법체류자라서 죽어도 된다는 소리인가 싶었고, ‘저러다 언젠가 보복을 당하지’ 싶었다고 한다.
최근 한 물류회사에서는 남자직원이 술을 거부하는 여직원의 머리에 수차례 술을 붓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사과요청에 가해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했고, 팀장까지 합세하여 가해자를 옹호하며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다 cctv와 목격자 증언이 나오자 뒤늦게 시인을 한 사건이다. 머리에 술을 수차례나 붓다니, 이게 2024년에 일어나는 일이 맞는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초중고 12년 동안 가만히 있는 사람을 괴롭혀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런 식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일까?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나는 저런 사건들이 괴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1971년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진행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서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간수와 죄수 역할로 나누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간수 역할의 학생들이 죄수 학생들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권위가 주어지자 괴롭힘을 가하게 된 것인데, 이는 사람들의 행동이 상황과 역할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괴롭힘은 순한 사람을 상대로 일어난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했다가 상대의 반응을 보며 점점 강도를 높여 가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순한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한 여직원은 순한 성품의 사람이었을 것이고, 가만히 있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저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팀장까지 합세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 것을 보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팀 전체에 저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스탠퍼드 감옥 실험처럼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취급 당하니 맞서 싸우라는 말도 맞지만, 누구나 다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에 술을 부은 사건의 피해자는 그나마 증거를 찾아서 대응할 용기가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용기 없이 당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왜 가만히 있었냐”라고 하는 것 역시 폭력이며 2차 가해일 것이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왜 자신이 그들을 위해 맞서 싸워주지 않았는가’ 반성부터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상대가 꼼짝 못 하니까 괴롭히는 자들이 나쁜 것이지, 마음이 약하고 용기가 없는 것은 절대 잘못이 아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안 좋게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에 후회로 남을만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앞으로 혹시라도 저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더 나아가 주변에서 약자나 부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을 지지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소심한 나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힘들다고 피하는 것 역시 폭력에 동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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