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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한 해설자 Nov 25. 2024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서울대 갈 수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위에 뭔가를 더해가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대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바뀌며 투사로 돌변하는 상사가 있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서울대를 나왔고, 자기도 공부를 잘해서 당연히 서울대에 들어갈 만했지만, 수능 직전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시험장에서 일부러 대충 보고 잠을 자서 서울시립대에 들어갔다며 목청을 높이곤 했다.


사실 그에게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라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다들 저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본인이 저런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변호했던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아서였던 것 같다. 자기 말이 설득력이 없어 보이니 답답해서 더 주장을 하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졌던 것이다.


비록 서울대가 아닌 서울시립대를 나오긴 했지만, 자신은 원래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의 모습을 초라하게 느낀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학교를 나왔건 사람들은 현재의 태도와 성과에 더 관심을 두는 법인데, 자꾸 본인이 저리 말을 해서 “학벌이 떨어져서 열등감이 있네”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는 것 같아 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 상사는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반복적인 자기 변호가 그 열등감을 더 드러냈다. 누군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호한다는 건 마음 한구석에 확신이 없다는 뜻이며, 그의 서울대 이야기는 사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행위였을 것이다. "나는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에게조차 확신이 없기에 자꾸만 저 말을 반복했던 것 같다.


저 상사를 보며 깨달은 또 다른 사실은 ‘부차적인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곳에서는 대개 중요한 본질이 가려진다’는 점이다. 그는 비슷한 연배의 명문대 출신들에 비해 책임감이 강했고, 항상 동료들을 배려했었다. 업무 능력 역시 앞서면 앞섰지 뒤처지지 않았고, 인간적인 매력도 상당한 사람이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했으나, 과도한 학벌 이야기로 인해 그의 진가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흐린 셈이었다. 과거의 한 장면, 그것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얽매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만약 학벌에 대한 아쉬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노력한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로 들렸을 것이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저 상사가 떠오른다. 그의 이야기가 불편했던 이유는 어쩌면 나 역시 마음 한구석에 과거의 일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를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과거의 후회되는 순간이 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위에 뭔가를 더해가는 것이리라.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그 상사에게 한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가치는 학벌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보여주는 태도와 선택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니 이제 학벌 이야기는 내려놓고, 지금의 당신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이 말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 될 것이다.


바쁜 일상 속 출 퇴근길, 잠들기 전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를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https://youtu.be/Y9kIeE-OW3k?si=yNVHoXH_3UG4vmV1

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 별을 기다리는 너에게


이미지 출처: 1. 서울대학교, 해안건축 홈페이지, 2.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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