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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Feb 09. 2020

생각의 기원

A Natural History of Human Thinking

저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진화인류학자로, 막스플랑크 진화인류연구소 소장이자 듀크 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이론인 '지향성 공유 가설'에 따라 인간 생각의 진화적 기원을 설명하는 대중서다. 간단히 풀어써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종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협력 본성'을 획득했다. 협력 본성의 핵심은 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추론하고, 공유하고, 나아가 사회 수준으로 격상시켜 구성원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능력 - 지향성 공유 - 이다. 인간은 이 능력을 이용해 효과적인 협업을 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 또한 누적적으로 진화해 현재의 문명사회가 만들어졌다.


저자가 사용한 용어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덧붙여서 몇 자 적어본다. 저자가 다루는 '생각'은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것에 가까운, 카네먼과 트버스키의 분류에 따르면 시스템 2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향성'은 자신과 타인의 의도를 표상하고 공유하는 생각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지향성'을 '의도'라고 읽어도 의미가 잘 전달될 것 같다. 저자는 지향성 개념을 이용해 인간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발달시켜온 생각의 방식 - 사회 인지 - 을 설명한다. 즉, 인간 종이 고유하게 지닌 생각 능력의 기원을 지향성 공유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지향성은 세 단계로 발전해왔다.

 

첫 번째 단계는 개인 지향성으로, 자신의 문제 해결과 목표 달성을 위해 타인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단계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대형 유인원도 이 단계의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단계에서 다른 개체와의 의사소통은 '이것을 해라'와 같은 지시적 표현에 한정된다. 

 

두 번째 단계는 공동 지향성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화했다. 이 단계의 의사소통은 지시적인 것을 넘어, 협력의 필요조건인 '정보 전달'을 다룬다. 재귀 추론(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연쇄적으로 추론), 중층적 인지 모델(공동의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 맡을 역할을 관계적으로 정의) 등의 능력이 수반된다. 저자는 약 40만 년 전의 인류 조상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이 단계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세 번째 단계는 집단 지향성으로, 인간 무리가 커지면서 언어, 관습, 사회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제 개인들이 표상하는 지향성은 개인 단계를 넘어 사회 수준으로 격상돼 집단 정체성, 사회적 제도, 규범 체계 등을 아우른다. 저자에 따르면 이 능력을 얻게 된 유일한 종은 약 20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요약을 해보았는데 썩 매끄럽지 않은 것 같다. 저자가 직접 내용을 요약한 5장 본문을 인용해본다.

 

1. 집단 구성원들과의 경쟁 때문에 인간 외 영장류의 사회적 인지와 생각이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사회성이나 의사소통에는 이르지 못했다. (개인 지향성 단계)
2. 초기 인류의 공동 협력 활동과 협력적 의사소통은 문화와 언어 없이도 새로운 형태의 인간의 생각을 이끌었다. (공동 지향성 단계. 언어 없이 손짓 발짓으로도 가능)
3. 현대 인류의 관습화 된 문화와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추론을 특유의 복잡한 형태로 진전시켰다. (집단 지향성 단계)
4. 문화의 누진적인 진화는 문화에 따라 특별한 인지능력과 생각의 유형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생각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건 2014년, 번역서가 출간된 건 2017년이다. 내가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며 심리학을 완전히 잊고 지내던 시절이다. 진작 읽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은 것 같다고 위안해본다. 아마 석사 과정 당시였으면 이런 대중서를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정작 공부하던 당시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진화심리학에 대해, 졸업 후 거의 십 년이 지난 최근에야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다. 하지만 과학의 지식 획득 방법을 믿는 사람으로서, 인간 마음의 궁극적 기원에 대한 해답은 결국 생물학의 메타 이론인 진화론에서 찾는 것 외에는 현재로서 더 좋은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책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호기심이 더 커진다. 역시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화심리학 핸드북' 출간 소식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11만원 짜리 책을 주문한 것은, 내가 지적으로 목말라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참고. 최재천 교수 서평 "드디어 우리 앞에 도달한 다윈의 예언" 링크)


이렇게 취미로 과학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는 논문도 읽고 연구도 하게 되는 날이 다시 오려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단은 손에 잡히는 책부터 닥치는 대로 읽어봐야겠다. 일단은 저자의 다음 책인 '도덕의 기원'부터. 잠깐 근데 맙소사, 진화와 도덕이라니, 내 관심 주제 1순위잖아. 주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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