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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리 Jul 27. 2023

윙윙 드라마

2013.12.08

도서관에 애들이 많이 오다 보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라마가 펼쳐진다. 특히 꼭 하루에 한 명씩은 나무를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 삐졌소, 하고 죄 없는 나무 껍데기만 긁고 있다. 근데 난 이런 게 왜 이렇게 웃기고 귀엽냐. 카메라 들이대고 큭큭거리니 뿔이 나서 카메라를 밀쳐낸다. 그래, 그럼 삐친 네 맘을 내가 알아주지, 하고 호랑이 사서 베로니카를 부름. 베로니카가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삐지게 한 다른 가시내를 불러서 또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서로 사과시키는 동안 난 카메라로 비디오 촬영. 재생해 보니 계속 내 큭큭하는 소리가 들림. 그러고 나니 이번엔 삐지게 한 고 가시내가 또 눈물을 펑펑 흘림. 아이고야. 뭐 일단 달래야 되니깐 사탕을 주며 대화합의 장으로 마무리. 남친님은 나보러 Bitch라며. 그 뒤 매주 토요일마다 나무 긁던 여자애 보면 우는 흉내 내면서 놀리는 나. 사악하긴 하지만, 너무 웃긴 걸 어떡해.


오늘은 급기야 세 건의 드라마.


미술 수업 참여하는 한 여자애가 이번엔 계단봉을 잡고 고독을 씹으며 울고 있길래, 넌 왜 우냐, 했더니, 스와힐리어로 신세한탄. 또다시 베로니카 님을 불러서 물었더니, 다른 애들이 욕을 했다나? 일단 사탕 주고 달래서 수업 앉혔더니 또 울길래, 난 그게 또 웃기니까 사진 찍었다. 또 역정을 내길래 그래 그럼 해결해 주지, 하며 방으로 불러들여서 자초지종을 물은 뒤 삐지게 한 용의자 3명을 차례로 부름. 용의자 3명은 굉장히 억울하다는 듯이 스와힐리어로 뭐라 뭐라 함. 알고 보니 삐진 가시내가 어디 행사가 있는데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싶다 했더니, 용의자 1,2,3이 야, 넌 너무 많이 먹는다 해서 삐진 거임. 난 또 웃긴데, 더 웃으면 진짜 몰매 맞을 것 같아서 뒤돌아서 웃다가,

    “그래, 다 알겠고, 너네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서로 뽈레 싸나 하고 마무리하자. 간식 먹어야 되지 않겠니?”

하고 대충 후루룩 마무리하고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용의자 2번이 눈물을 뚝뚝 흘림. 아 나 미치겠네, 귀여워서. 야, 니는 왜 우냐, 울지 마라, 뽈레 싸나다, 하고 후루룩 정리하고 나와서 간식 먹였는데, 이번에는 용의자 1님이 나한테 삐친 거 같음. 그래서 너네 왜 나한테까지 이러냐, 하며 호출하여 도서관 뒤로 끌고 감. (옛 버릇이 나오는 건가?) 니 나한테 화났니? 그랬더니, 하바나(아니)와 예스를 번갈아가며 하더라. 그럼 이번엔 사서 글래디스 불러서 도대체 얘는 왜 나한테 화가 난 거냐 물어보라 했는데 그런 거 아니래. 그러면 내 눈을 보고 아니라고 말해봐라 했더니, 대충 보고 노! 하면서 계속 삐지길래, 나도 피곤하니까 포기했다. 알겠다. 그럼 돌아가자.


아, 그러고 웃겨서 사서들이랑 저 가시내들 웃긴다 그러고 있는데, 저기서 우는 한 꼬맹이 또 발견. 사서도 이젠 웃겨서 웃음을 못 참다가, 대충 쟤 울린 너! 뽈레 싸나 해라! 하고 급 마무리.


그러더니 집에 가기 전, 간식 주고 남은 빵 상하니까 사서들 니네 셋이 나눠 가져가라 했더니, 사서 1이 자기는 오늘 엄마 집에 가니까 애들한테 말하고 다 가져가겠대. 니 맘대로 해라 했는데, 사서 2가 반대해서 사서 1이 삐짐.


이건 뭐 어른이고 애들이고 삐지고 울고 난리도 아닌데, 이런 소소한 드라마들이 일어나는 요 도서관이 더 정감 있고 웃기고 귀여운 건 뭐지?


Bitch: ‘나쁜 년’이라는 뜻의 영어
뽈레 싸나: ‘정말 미안하다’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하바나: ‘아니’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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