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0
토요일 종일 일했더니 피곤이 가시지 않아 오늘은 좀 쉬어볼까 했는데 케냐 아버지들의 방문을 받은 오전이었다. 현지 직원 부와나가 찾아와 일 얘기로 시작해 자연히 화제는 돈을 어떻게 불릴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들 둘 딸 둘을 둔 부와나는 돈을 어떻게 모을까 하는 고민이 크다. 아저씨의 아내 분은 자식 한 명 한 명마다 은행 계좌를 만들라고 했다는데, 자기는 그건 좀 아닌 것 같단다. 작년엔 땅을 좀 사서 나무를 심었고, 계좌를 여러 개 만들어 돈을 모아 농기계를 샀다고. 아저씨한테 일단 가계부를 써보라고 얘기를 하면서, 올해 일흔넷 된 우리 아버지도 돈 백 원 쓰신 것도 다 적으신다고 말씀드렸다.
부와나를 보내고 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익숙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쳅세레곤 부와나다.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내미의 취업에 대해 물어오셨다. 저는 그 학교랑 상관없는 사람이라 뭘 해줄 순 없다 했지만, 소중히 가져오신 서류를 안겨주신다. 아들 여섯에 딸 둘을 가진 부와나는 다 결혼시키고 아들내미 하나만 남았단다. 이것저것 수다를 떨다 아저씨 가시는 길 배웅하러 대문 밖에 나갔는데, 그냥 그 뒷모습을 한참 보다 들어왔다. 지켜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걸음걸이가 어색해지는 그 나이대의 부와나의 등이 그냥 우리 아버지 등 같아 마음이 짠하다. 누구보다 크던 체구가 작아지고 넓디넓던 그 어깨가 어느새 좁아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을 울린다. 자식의 앞 길을 위해 새파랗게 젊은 외국인 처자에게 아쉬운 소리 하러, 서류 곱게 가방에 넣어 먼 길 걸어온 그 마음. 언제나 당당한 앞모습과는 달리, 어느새 어색해진 그 뒷모습과 그 걸음걸이가 부와나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다. 포토샵으로 꾸민 사진을 드렸더니, 기분 나빠하시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너무 좋아하신 우리 쳅세레곤 부와나. 부와나도 아버지였다. 케냐의 아버지.
갓 아버지가 된 내 친구 함 씨는 그냥 아저씨가 돼 간다며 징징거리다가도, 아들내미 잘 생겼다며 아들 바보가 되어간다.
오늘은 세 아버지들과 수다 떠느라 마음이 짠하고 감사한 날이다.
부와나 (Bwana): 아저씨의 스와힐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