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1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두 달을 지내다 보니, 사람에게 지쳐갔다. 그리곤 내가 잘못된 건가, 이상한 건가라며 나도 모르게 의문을 가지게 됐다. 나는 일반적인 한국인이 아니라 잘못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말. 일반적이란 건 또 무엇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나쁜 건 또 뭐란 말인가 하면서도, 다른 건 나쁜 거란 그들의 말에 상처를 입는 날들이었다.
사람에 지쳐, 특히 한국 사람들에 지쳐 대한항공이 편하지 않은 열두 시간이 지나고, 웃는 인사에 찡그려 답하는 공항의 한국 사람들에 놀라며 자동문을 나섰을 때. 나를 보고 웃고 있는 한국인 1인 발견.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얻은 박스에 환영카드 그리며 밤새 날 기다렸다는 똘순아. 완벽한 타이밍의 서프라이즈다.
새벽 네시반에 국밥을 먹으며, 그래서 내가 이상한 거니, 잘못된 거니라고 묻자, 아니야 그런 거. 잊어버려. 다른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단이었을 뿐이야 하고 말한 똘순아. 새벽 다섯 시 반에 우리는 진지하게 팩소주를 깔까 맥주를 깔까 고민하다 아사히 맥주를 깠다. 똘순은 출근을 해야 하고 난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니까. 그래 우리는 누구보다 책임감 강한 년들이었다.
새벽 여섯 시에 똘순아는 벤치에 드러누우며 잠시 고민을 했다. 여기 누워도 되겠지? 똘순도 나이가 들었구나. 홍대 정문에서도 드러눕던 년이. 인증샷을 박으려다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그녀가 만든 박스를 얼굴에 덮어주었다. 그녀는 이게 더 이상하다고 궁시렁거렸고, 옆에 있던 외국인 남자는 피식 웃었다. 사진 다 찍고 나도 옆벤치에 드러누웠다. 문득 똘순의 손을 잡고 싶어 손을 내밀어 잡았다.
“뭐야 이거, 엄청 사랑스러운 장면인데?”
하는 똘순의 헛소리에도 난 감동받았다. 9년간 똘을 지켜온 그대가 나를 위해 공항에서 밤새어 주다니. 맞잡은 손이 따뜻했다만 곧 똥이 마려워진 나는 벌떡 일어나 똥을 싸려는 시도를 하러 갔다. 그 길에 입고 있던 모 교회의 구호물품이었던 트라이 런닝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매우 상징적인 행동이다. 똘순은 일회용 런닝이냐고 비웃었다. 벤치에 돌아와 보니 아까 그 외국남자는 역시나 우리에게 감동받아 맥주를 까고 있었다. 새벽 여섯 시 반에. 카스를. 우리는 비록 일본 맥주를 깠지만 우리에게 감동받은 그는 카스를 깠다. 이런 게 진정한 한국문화 수출이 아니겠는가.
새벽 여섯 시 사십오 분, 두 시간 반의 데이트를 마치고 우리는 주섬주섬 일어났다. 나는 경주로 너는 서울로 가야 할 시간. 경주 차를 타려는데 전주 차는 저쪽이라며 기사님이 말했다. 천재다. 똘순아가 전주댁인걸 어떻게 알았을까. 세상이 뭐라 해도 한국의 두 역사도시에서 자란 우리는 한국의 똘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신라 천년의 똘, 홍익인간의 똘을 간직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창문 너머의 똘순아를 보며. 고맙다 내 사람들. 똘을 간직하고 살자, 이 험난한 세상에 맞서.
약간씩 미치면 세상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