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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9시간전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오랜만의 회식이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의 하원을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회식자리에 갔다. 다들 맞벌이에, 주말부부에 아이 엄마, 아빠들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온 선생님들도 있었다. 첫째 아이가 이틀째 배가 아픈 터라 아이의 저녁메뉴가 걱정되기도 했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회식자리는 7시면 끝났다. 집 현관을 여니 첫째 아이는 반갑게 뛰어나오고 둘째 아이는 안방에 있다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왔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00는 먹을 거 아무것도 주지 마! 이거 달라고 했다가 저거 달라고 했다가 하나도 먹지도 않고! 버릇 고쳐야 돼! 아무것도 주지 마!"


잔뜩 화가 나 있다.

아침에 폭탄 맞은 듯한 흔적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 읽고, 블로그에 글 쓰고 하는 것도 좋은데, 집 정리도 좀 해."


새벽 4시 반부터 6시 반까지로 정해놓은 새벽독서는 그날따라 6시 반에 끊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하려던 찰나에 둘째 아이가 서재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내 무릎에 올라와 한참을 칭얼거리기도 하고 내 책상의 것들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아이를 달래서 식탁에 먹을거리를 챙겨 놓고 머리를 감았다. 첫째 아이가 좀처럼 일어나질 않았다. 고데기를 주방으로 가져와 거울 앞에서 잠깐 머리를 매만졌다. 그 거울에서 화장도 간단히 했다. 알레르기가 있는 첫째 아이 반찬을 싸고 있을 때 늦게 일어난 첫째 아이는 밥이 먹고 싶다며 밥을 달라고 했다. 밥 먹을 시간이 없는데도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는 약도 안 먹는다 옷도 안 입는다며 대치하기 시작했다. 7시 33분. 7분 남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지금 안 나가면 교장선생님한테 혼나! 어떻게 할까? 밥 먹고 늦게 가서 엄마 교장선생님한테 혼날까? 아니면 차 안에서 떡 먹으면서 갈까?"


그나마 말이 통하는 6살인 첫째 아이는 자기 밥을 포기하고 나설 채비를 했다. 둘째 아이는 그때까지도 막무가내였다. 첫째 아이를 붙잡고 나가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자기 점퍼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점퍼 지퍼가 말썽이었다. 속이  터졌다. 다행히 지퍼를 올리고 찡찡거리며 집을 나섰다.


정말 오랜만의 회식이었고 폭탄 맞은 아침풍경을 남편이 퇴근 후 맞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을 거다. 주방 씽크대엔 어제 씻지 못한 내 도시락 통들이 있었을 거고, 주방 거울 앞엔 내 고대기와 화장품들이 널려있었을 거고, 식탁엔 아이들이 아침에 먹은 것들이, 정수기 앞엔 아이들 약봉지들이, 아이들 옷을 벗겨 그 옷들은 거실 바닥이나 소파에 던져 놓았던 것 같다. 아이들 양말을 꺼내다가 서랍이 빠져버려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다 쏟아졌지만 그냥 나와야 했다.

이 폭탄 맞은 풍경을 보며 내 탓을 했었을까?...

내가 아침에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입을 꾹 닫고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와 매달리기 시작한다.


"이리 와 앉아봐!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쁠 말이야?"


입을 열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입을 열고 말았다. 생각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나보고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소리야? 자기는 오늘 하루 일찍 퇴근하고 와서 애들 찡찡거리는 거 하루 겪었지만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겪어. 이렇게 아등바등하는데도 더 하라고 하면 나는 더 이상 못해! 이 꼴이 못 견디겠으면 도우미 써! 나는 더 이상 못해!"


그럴려고 한게 아닌데 감정이 북받쳐 울음이 나왔다.


"아니 이게 그렇게 울고 불고 할 일이야?"


"나한테 따지지 말고 내가 왜 이렇게 울고불고하는지 생각해 봐! 나도 살기 위해서 4시 반에 일어나서 책 읽는 거라고! 내 블로그 가서 내가 쓴 글 좀 읽어봐!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


새벽 4시 반에서 6시 반은 내 영역이었다. 그건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입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울고불고하면서 내 감정을 토해내면서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토해 냈어도 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직도 남편이 밉고 말도 하기 싫다.


왜 이런 제목의 챕터가 펴졌을까?

삶이 되지 못하고 입에서만 머문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라서 마음에 안기지 못하고 거짓이 되어 사방으로 펴진다. 그러니 분노로 만만한 상대를 비열하게 제어하고, 이기려는 자가 있다면 늘 기억하자


내가 토해낸 분노는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른 게 아니라 타인을 제어하고 꺾기 위해 내가 부른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갈등에서 나는 이런 식으로 반응해 왔는지도 모른다.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울면서 소리 지르면서 호소하면서 연약한 척하면서... 그러면 남편은 꽃을 사 오거나 살금살금 다가와 미안하다고 하곤 했었다. 매일 새벽 독서를 하면서도 나의 지적 수준은 이 정도였다.


지식이 삶이 되는 지적 수준은 무엇일까?

반응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

반응은 순간적인 본능에 충실한 감정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지성이다. 만만한 상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상대 수준에 맞춰 분노를 꺼낸 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상황을 지배하려고 한다. 분노를 불러 그를 막무가내로 미워할 수 있게 나쁜 감정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대응은 생각과 생각이 겹쳐 나오는 최선의 해결책이다. 사태에 맞추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평생 쌓은 관찰력과 안목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성이 필요하다.


우연히 펼친 이 두 책의 두 챕터의 글들은 살아 움직여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선택한 언어로 내 삶이 지어진다.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봐야 할까?...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이유는 마음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는다. 상대에게 전할 마음이 뜨거운 만큼 말과 글로 전할 방법도 치열하게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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