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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Sep 11. 2022

명절은 너무 가혹해

비글 산책 잔혹사

* 이 글은 전지적 '꾹이' 시점으로 쓰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명절이라 누나가 온다고 했다.

누나가 오면 나는 많이 먹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하지만 동시에 너무 힘들다. 왜냐면 누나는 산책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에 미쳤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누나는 지치지도 않는다. 먹고 자고 눈뜨면 산책 가자고 리드줄을 챙겨 온다. 매번 그런 식이다. 오늘은 그런 누나가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조금 울었다.


누가 이거 올렸어요? 왜 우리누나를 자극시켜요?ㅠㅠ




오랜만에 만난 누나는 보자마자 내게 살쪘다고 잔소리했다. 누나도 조금 살이 찐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연휴 내내 누나가 온 집안사람들에게 '나 살쪘어?'를 묻기 시작하기 때문에 모르는 채 눈 감아줬다. 곧이어 누나가 냉장고를 뒤지며 이 것 저 것 먹기 시작했다. 꾹 참고 싶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식욕왕 비글이니깐 한 입 얻어먹어보고자 누나 옆에 살며시 앉았다. 아뿔싸, 그 바람에 살포시 겹친 뱃살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엄마 꾹이 살쪘어?"


...망했다.


부끄럽지만 내 뱃살이다. 내 프라이버시는 없나...


누나는 갈비 몇 조각을 주더니 얘 산책시켜야겠다고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잠이 많은 강아지인데 누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침저녁 산책을 시켜야 한다며 온 집안사람들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주어야 할 엄마도 더 이상은 못 듣겠다는 듯이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네가 여기 있을 동안 산책시켜주면 되잖아!"


밉다. 엄마가 진짜 밉다. 엄마는 발 아프다고 같이 산책 가지도 않을 거면서 남 산책 가라는 말은 쉽게 한다. 달그락.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누나가 리드줄을 들고 온다. 달그락달그락.


첫날은 즐거웠다. 첫날은...
어쩌면 첫날만 즐거웠는지도...


사실 나도 산책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도시에 사는 강아지니깐 이 도시에, 그리고 이 가족의 스타일에 완벽히 적응한 거다. 우리 집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니는 걸 좋아하니 나도 드라이브를 즐기는 강아지가 되었을 뿐. 나는 그저 빌딩 숲 사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강아지인데!

이 누나만 그걸 모른다.


흔들리는 가로수 속에서 내 개냄새가 느껴진거야(글썽)


드라이브가 나에게는 너무나 훌륭한 산책인데, 난 이걸로도 충분한데 누나는 개가 네 발로 뛰어야 된다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나는 힘들면 안아달라고 하는 무릎 강아지니깐 힘껏 안아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 누나는 나를 들쳐 안고 걷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덧붙여 나는 개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나는 개가 아니고 그냥 꾹이일 뿐인데, 산책만 갔다 하면 동네 개들이 킁킁대며 내 엉덩이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이 여간 불쾌하기만 하다. 그래서 산책길, 특히나 동네 개들이 모이는 공원 산책은 정말이지 기가 빨려서 너무 싫다.


저기 멀리 개가 있다. 누나.. 집에 가자... 빨리...


산책 또 산책.

발 닦고 좀 쉬다가 또 산책.

누나는 친구도 없나, 다른 사람들은 약속 잡아 잘도 나가는데 이 누나만 남아있다.


곧 나는 또 산책을 하게 되겠지...


눈에.. 초점이... 힘이... 안들어가...
날 제발... 내버려둬... 산책 더는... Naver...


연휴 끝자락.

누나가 드디어 내일 집에 간다고 한다. 야호!

뭐랄까, 마음이 시원섭섭하다. 갈비뼈 챙겨주는 누나가, 황태포 간식 주는 누나가 가버린다니 조금은 섭섭한 것 같기도?

잠깐만... 아니 아니야. 아니야! 내가 말 잘못했어.

누나 나 하나도 안 섭섭해! 나는 괜찮아 괜찮아!

아니야! 산책 안돼!!!!


"꾹아, 누나 가기 전에 오늘은 등산 다녀오자!

그리고 밤에 공원 산책 한번 더 갈 거야, 알겠지?"


다음 연휴때는 누나가 안왔으면 좋겠다.

6살 견생걸고 말한다.

진심이다.  끝.


등산길 초입에서 한 컷(사람 없는 등산길에서 찍고 바로 리드줄 잡았습니다!)
아 됐고 모르겠고 빨리 집에가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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