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오면 나는 많이 먹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하지만 동시에 너무 힘들다. 왜냐면 누나는 산책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산책에 미쳤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누나는 지치지도 않는다. 먹고 자고 눈뜨면 산책 가자고 리드줄을 챙겨 온다. 매번 그런 식이다. 오늘은 그런 누나가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조금 울었다.
누가 이거 올렸어요? 왜 우리누나를 자극시켜요?ㅠㅠ
오랜만에 만난 누나는 보자마자 내게 살쪘다고 잔소리했다. 누나도 조금 살이 찐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연휴 내내 누나가 온 집안사람들에게 '나 살쪘어?'를 묻기 시작하기 때문에 모르는 채 눈 감아줬다. 곧이어 누나가 냉장고를 뒤지며 이 것 저 것 먹기 시작했다. 꾹 참고 싶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식욕왕 비글이니깐 한 입 얻어먹어보고자 누나 옆에 살며시 앉았다. 아뿔싸, 그 바람에 살포시 겹친 뱃살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엄마 꾹이 살쪘어?"
...망했다.
부끄럽지만 내 뱃살이다. 내 프라이버시는 없나...
누나는 갈비 몇 조각을 주더니 얘 산책시켜야겠다고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잠이 많은 강아지인데 누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침저녁 산책을 시켜야 한다며 온 집안사람들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주어야 할 엄마도 더 이상은 못 듣겠다는 듯이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네가 여기 있을 동안 산책시켜주면 되잖아!"
밉다. 엄마가 진짜 밉다. 엄마는 발 아프다고 같이 산책 가지도 않을 거면서 남 산책 가라는 말은 쉽게 한다. 달그락.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누나가 리드줄을 들고 온다. 달그락달그락.
첫날은 즐거웠다. 첫날은...
어쩌면 첫날만 즐거웠는지도...
사실 나도 산책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도시에 사는 강아지니깐 이 도시에, 그리고 이 가족의 스타일에 완벽히 적응한 거다. 우리 집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니는 걸 좋아하니 나도 드라이브를 즐기는 강아지가 되었을 뿐. 나는 그저 빌딩 숲 사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강아지인데!
이 누나만 그걸 모른다.
흔들리는 가로수 속에서 내 개냄새가 느껴진거야(글썽)
드라이브가 나에게는 너무나 훌륭한 산책인데, 난 이걸로도 충분한데 누나는 개가 네 발로 뛰어야 된다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나는 힘들면 안아달라고 하는 무릎 강아지니깐 힘껏 안아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 누나는 나를 들쳐 안고 걷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덧붙여 나는 개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나는 개가 아니고 그냥 꾹이일 뿐인데, 산책만 갔다 하면 동네 개들이 킁킁대며 내 엉덩이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이 여간 불쾌하기만 하다. 그래서 산책길, 특히나 동네 개들이 모이는 공원 산책은 정말이지 기가 빨려서 너무 싫다.
저기 멀리 개가 있다. 누나.. 집에 가자... 빨리...
산책 또 산책.
발 닦고 좀 쉬다가 또 산책.
누나는 친구도 없나, 다른 사람들은 약속 잡아 잘도 나가는데 이 누나만 남아있다.
곧 나는 또 산책을 하게 되겠지...
눈에.. 초점이... 힘이... 안들어가...
날 제발... 내버려둬... 산책 더는... Naver...
연휴 끝자락.
누나가 드디어 내일 집에 간다고 한다. 야호!
뭐랄까, 마음이 시원섭섭하다. 갈비뼈 챙겨주는 누나가, 황태포 간식 주는 누나가 가버린다니 조금은 섭섭한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