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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Jul 17. 2022

강아지 셔틀 서비스

유기견 이동봉사를 하다

시작은 인스타였다.

할 일 없는 주말 뭘 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채울지 고민하다가 유기견 이동봉사자를 찾는 글을 보게 되었다. 해외 이동봉사라고, 해외에 방문할 때 그곳으로 입양 가는 강아지를 운반해주는 봉사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국내 이동봉사는 다소 생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개의 블로그 후기만(그것도 소형견..!) 조회될 뿐, 인터넷에도 충분한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번쩍 든 손 이참에 드라이브나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총 400km, 7시간이나 걸릴 줄이야!


출발 전 날 쉼터에서 보내준 안내문에는 강아지를 목줄과 리드줄을 채워서 좌석 헤드에 고정시키거나 강아지용 안전벨트를 채우면 된다고 매우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담요나 버릴 이불을 챙겨 오면 좋을 거라고도 덧붙였는데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뒤늦게 주변에 수소문해보았지만 결국 담요나 이불을 찾지 못하고, 대신 조수석에 방수 돗자리를 묶고 그 위에 배변패드를 깔았다. 물론 하루뿐이지만 강아지의 마음을 빼앗을 간식도 두둑이 채워놓은 채.


과하다 과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일찍히 충남 모처로 운전대를 잡았지만 이건 뭐 처음이라 해도 너무 준비가 안된 상태로 출발하는 느낌이었다. 충동적인 면이 없지 않은 본인이라지만 이렇게 준비 없이 가도 되나 싶었다. 강아지가 내 차에 똥이라도 싸면 어떻게 하지, 멀미하는 녀석들도 있다던데, 갖가지 고민들을 꾹꾹 눌러 담고 냅다 액셀을 밟았다.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센터에서 내 차에 친히 모시고(?) 갈 강아지를 만났다. 이름은 뚱실이, 원래 뚱실뚱실 먹는 걸 좋아해서 살이 많이 찐 뚱실이인데 최근에 다이어트를 좀 했다고 한다. 강아지의 기준이 15kg 중형견 꾹이인 본인이라 토실토실 살집 있는 대형견 뚱실이의 몸집에 조금 압도당했지만 사람 좋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헤헤 거리며 애교 부리는 뚱실이의 모습에 그간 고민은 사르륵 녹아버렸다.


케이지에 탄 뚱실


각설하고, 대형견 이동봉사시 꿀팁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먼저, 집에 케이지가 있다면 가져오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센터에서 빌려주고 반납하면 된다. 뚱실이의 경우 입양 전 사회화 등 훈련을 하는 위탁센터로의 이동이었기 때문에 도착지에 케이지를 반납하면 되었다.

케이지 안에 배변패드는 무용지물, 거의 세 시간에 이르는 장거리 운전 동안 강아지들이 긴장하기 때문에 케이지 안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많이 움직여서 배변패드는 사실상 탑승 3분 후 구석에 짱 박히고 말았다. 또 강아지가 너무 예쁘다고 케이지에서 빼는 것도 자제하는 게 좋다고 한다. 특히 뚱실이처럼 큰 몸집의 아기 같은 개들은 사람이 좋다고 치댈 수 있기 때문에 운전 시 위험할 수 있다. (소형견은 케이지 없이 무릎강아지로 이동하거나 방석 위에 앉혀 오기도 하는 것 같다! 개바개인듯!)

마지막으로 간식은 금물. 가다가 멀미나 배변 실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뚱실이는 꽤나 매너 있는 강아지라 차 안에서는 꾹 참다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원하게 일을 보았다. 멀미도 없는 게 여간 기특한 녀석이었달까!




긴 시간 뚱실이가 지루하지는 않을까, 혹시 멀미 하지는 않을까 노래도 안 듣고 더운 날씨에도 창문을 열고 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면 뚱실이의 움직임이 조금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강아지가 좋아하는 유튜브도 틀어주긴 했는데(ㅋ) 자장가같이 느껴져서 금세 꺼버렸다. 가끔 뚱실아! 뚱실아! 불러주면 살짝 관심을 갖는 듯했으나 안전운전이 최선이기에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위탁센터에 도착했다. 사실 뚱실이랑 한참을 드라이브했음에도 뚱실이 등짝도 한번 못 긁어준 게 아쉬웠는데, 위탁센터 측에서 배려해주셔서 잠깐 뚱실이랑 놀고 가라고 양해해주셨다. 마침 센터 저녁식사 시간이라 다른 강아지들이 실내서 식사 중이어서 넓은 마당서 뚱실이랑 단 둘이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

오예!


위탁센터 온다고 미용한 뚱실ㅋㅋ
간식주라고 애교부리는 걸 보니 확실히 먹는걸 좋아하는 뚱실


가져온 간식을 모조리 털리고 뚱실이랑 20분 남짓 놀았을 까, 어둡기 전에 돌아가야 했기에 다시 센터를 나섰다. 사실상 초면인 뚱실이와 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으나 방실방실 웃는 깨발랄 대형견 뚱실이에게 내가 더 큰 힘을 받고 온 듯했다. 케이지에 타고 있던 뚱실이가 몸을 바르르 터는 바람에 차 뒷좌석에는 개털이 잔뜩 쌓였지만,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왠지 어색했던 그날 오후 나는 뚱실이가 행복한 가정에 입양 가기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아 그래서 이동봉사를  추천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사실 유기견센터 봉사를 하는 선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직접 견사를 청소하고 강아지를 씻기고 놀아주는 그들에 비해서 나의 이동봉사는 어찌보면 위선적이라 느껴지는 수준이다. 말로만 개사랑을 외치면서 사실 우리 강아지 하나 건사하기 힘든 본인이라 그저 계기시 이동봉사나 물품 후원과 같은 편한(?) 봉사만 하는 정도라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이동봉사는 자가용과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봉사다. 그래서 나와 같은 마음이 있는 자라면, 대신 굳이 오바해서 무리하는 대신 장거리 이동 계획이 있는 날이나 자동차 내부 세차를 앞두고 있는 어느 날 한 번쯤은 도전해볼 만하다.


행복해야해 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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