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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Jul 03. 2022

나의 개가 늙는다

댕댕이의 흰머리

강아지라는 단어는 사실 '개의 새끼'를 일컫는 말이다. 모든 생물은 응당 노화하기 마련이니까 강아지도 언젠가 성견이 되고 노견으로 늙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늙은 반려견에게도 강아지라고 표현하곤 한다. 마치 영영 늙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강아지도 흰 털이 난다


꾹이는 15년 12월 생이니깐 22년 7월 기준 6살 하고도 반년을 넘게 더 살았다. (한국 나이로는 8살!) 네이버 검색 결과 중형 강아지 평균 수명이 약 14년 정도 되니 꾹이는 강아지 인생 중 중년쯤 온 셈이다. 하긴 지난 6년 동안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하물며 인간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사는 개는 더 빠르게 늙어갔을 터인데, 나의 귀여운 강아지의 노화를 마주하기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중년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철딱서니


견생 6년 차 꾹이는 원래도 둔하고 게을렀지만 조금 더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플라스틱 밥그릇조차 뜯어먹던 과거 엄청난 식성과는 다르게 가끔 속이 불편해서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정말 놀라운 부분!). 무엇보다도 얼룩무늬 비글 털에 흰털이 늘어난다 인간의 흰머리처럼.


6.5살 개족사진 찍었던 날.jpg


얼떨결에 반려견과 함께하게 되기도 했지만 개의 흰털은 생경하기만 하다. 갈색 얼룩무늬가 돋보이는 비글 꾹이의 눈가가 어느 날부터인가 희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둔해졌지만 여전히 사고뭉치인 우리 집 막내의 눈가에 흰 털을 보고 있자니 흘러간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얼핏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끔 반려견 입양을 고민하는 지인들이 물어올 때가 있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은 어떠냐고. 특히 비글이니깐 더 힘에 부치는 순간도 많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은 조금 멍청하지만 귀여운 막내 녀석 때문에 웃는 날이 더 많기에 반려견이 주는 힘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참 반려견 입양의 장단을 주고받노라면 대화의 끝은 항상 '그럼 죽으면 어떻게 해? 강아지들은 빨리 죽잖아. 너무 슬플 것 같은데...'로 끝나곤 한다. 반려견의 시간은 우리보다  더 빠르니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반려견의 죽음은 사실 피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상상조차 너무 두렵기에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하고 대화를 끝내버린다.


댓글시인 제페토 시집 중


사실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가족과 떨어져 사니깐 그런 순간이 오면 당장 휴가를 쓰고 달려가야 하나? 집은 어떻게 가지? 펑펑 우는 거 아니야? 근데 또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진 않을까..?

흰 털 몇 가닥으로 죽음까지 생각해버리는 걱정 많은 견주는 한동안 고민 끝에 그냥 오늘을 좀 더 즐겁게 살기로 해본다. 우연처럼 견주와 반려견으로 만나 우당탕탕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했던 지난 6년간의 시행착오를 지나 이제 조금은 서로가 편해진 우리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얼마나 더 재미있게 보낼지 고민해본다. 여전히 꾹이가 물어뜯는 휴지에 맴매 어딨냐고 꾸짖고, 그런 누나가 무서워서 고개 조금 숙이다 어느 순간 억울해져서 으르렁 거리다가, 극적으로 화해한 뒤 산책이나 나가는 우리의 일상이 이대로 쭉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꾹이는, 그러니깐 늙어가는 우리 강아지는, 하얗게 새어버린 털까지도 귀여우니깐!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꾹!


누나들이랑 즐거웠던 어느 토요일 산책




한동안 연재를 쉬었습니다.

꾹이와의 에피소드는 물론, 반려견 이야기까지 공유하던 브런치가 어쩌면 또 다른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부지런히 글을 써봐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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