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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Sep 09. 2018

저를 왜 버리시나요?

생명을 유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어두운 밤 혹은 새벽,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조용한 골목길에 차 한 대가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인기척을 살피는 듯 주위를 쓱 둘러보는 이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다.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는 계획을 재빨리 실행에 옮긴다. 내려놓고, 문을 닫고, 엑셀을 밟는다. 재빨리 달아나버리는 차를 한참이나 쫓아가는 작은 움직임까지.

안타깝게도 완전범죄를 꿈꿨던 당신의 행적을 누군가는 쭉 지켜보고 있었다. 블랙박스부터 cctv까지, 당신을 지켜보고 있던 눈은 생각보다 많았다.


지켜보고 있다! (feat. 갑빠)



잊을 만하면


SNS에 루틴처럼 올라오는 동영상 중 하나, 바로 반려견을 유기하는 이의 뒷모습이다. 동영상은 올라올 때마다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다.

[개를 왜 버림?]

[그럴거면 키우지 마라 진짜]

[천벌 받을 인간들 ㅉㅉ]

하지만 엄청난 조회수와 댓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또 개를 버린다. 아니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유기견에 대한 관심은 들불처럼 일었다가, 촛불처럼 쉽게 꺼져버릴 뿐이다.



내가 개를 직접 키워보니


꾹이와 함께한 지 2년 하고도 7개월이다. 그 지랄맞다는 비글과 함께하며 소파도 갈고, 이불도 십 여 개 버리고, 신용카드도 수 차례 재발급 했더랬다. 지치지도 않는 이놈의 저지레를 치우면서도 단 한 번도 개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농담처럼 '우리 개는 누구한테 줘도 안 키울겨'할 뿐이었지. 물건은 버릴 수 있다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심지어 우리가 이름까지 붙여준 동물을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며칠 전 대환장파티.. 참을 인 자 59272번째 새긴 날


그러나 반려견을 버리는 이들은 유기하는 방법마저 기상천외하다. 한때는 예쁘다고 이름 붙여주고, 안아주고, 재롱에 한참을 웃었을텐데도 유기할 때는 봉투에 담아 묶어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고 뚜껑을 닫아버리고, 인적 드문 시골길에 내려놓고 엑셀을 힘껏 밟아버린다. 그나마 자신들은 '그렇게 까지는' 잔인하지 않다고 믿는 이들은 강아지가 쓰던 물품과 함께 케이지에 담아 "죄송해요, 예쁘게 키워주세요"라고 적어두고 떠나버린다. 며칠 먹을 사료와 물을 함께 담아.



책임감은 생각보다 무겁다


예쁘고 귀여워서 끝까지 잘 키워봐야겠다고 다짐했던 처음의 그 마음과는 달리 반려견을 책임지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개는 털이 많이 빠지고 냄새도 난다. 한 달에 한 번씩 챙겨야하는 심장사상충 약 외에도 이따금 아파 병원을 가야하며 사료와 간식값 등 돈도 많이 들어간다. 꾹이는 워낙 식탐이 많아 뭐든 잘먹지만, 당신의 개가 입이 짧은 편이라면(이는 흔히 있는 일이다!) 사료 역시 치킨 값의 몇 배나 되는 것을 골라서 골라서 먹여야하는 경우도 있다.


나 저거 사줘 저거 사주라고!!! (는 아닙니다만)


뿐만 아니라 내가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산책을 가야하는데 만약 실외 배변견이라면 하루에도 몇 차례 개와 함께 나가야한다. 말이 좋아 산책이지 나갈 때면 개 물통, 배변봉투, 하네스 등 챙길 것도 많아 영화에서 본 것처럼 한 손에 아메리카노, 한 손에는 목줄을 쥐며 여유롭게 노래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견종은 손에 꼽는다. 또 산책 후에는 어떤가, 내 외투를 벗기도 전에 개 발을 닦아주고 들고간 짐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몇 십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이날도 전 피곤에 쩔었답니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이 모든 상황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애초에 선진국처럼 반려견을 분양받을 때부터 자격을 꼼꼼히 따지는 면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쉽게 순간의 기분에 따라 반려견을 물건처럼 돈 주고 살 수 있는 펫숍을 없애고 대신 유기견을 분양토록 연결해주는 것 역시 책임감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정은 핑계일 뿐


사정이 있어서 개를 버렸다 한다. 갑자기 애가 생겨서, 이사나 이민을 가게 되어서, 개를 싫어하는 반려자를 만나서,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혹은 개가 너무 말썽을 부려서. 이들에게 반려견은 처음 데려온 날 귀여웠던 모습과 달리 그저 귀찮은 짐일 뿐, 물건과 달리 생명은 막중한 책임감을 수반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몰랐다는 당신의 말은 핑계일 뿐이다. 키워보니 생각보다 달랐다는 당신의 말은 생명 유기를 합리화하는 핑계일 뿐이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녀석의 몸집이 지금보다 더 커졌을 때, 밥을 더 많이 먹게 될 때, 아프게 될 때까지 내다보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꽤 어려운 문제였는데 당신들은 너무도 쉽게 선택을 해버린 거다.


"아시겠냐구요!! -_-"



버려진 개들의 눈빛


꾹이를 기르며 말로만 듣던 유기동물 센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 손으로 반려견을 버리는 영상을 보고서 분노하기에만 그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유기견 센터에 방문한 날은 길을 잃은 강아지를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케이지에 매달린 채 내 발길만 따라 쳐다보며 인간의 눈빛을 갈구하는 크고 작은 개들을 보며 꼭 다시 와야지 결심했었다. 그리고 최근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첫 월급으로 간식을 사들고 센터를 다시 찾았다.



여전히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서며, '미친 척 하고 한 마리만 더 데려올까' 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인간에게 생명을 버릴 권리를 허한 것일까. 반려견을 버리는 이들은 어째서 자신들이 생명을 유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바랬다.

차라리 너희가 그저 길을 잃었기를.

그저 처음부터 길에 떠돌던 개이기를.

절대, 절대로 인간에게 버려진 생명이 아니기를.


그리고 개를 버릴까 고민하는 당신에게


당신이 버릴까 고민하는 강아지는 바보같게도 당신이 붙여준 이름만을 기억한 채 평생 못난 당신을 기다리다 죽을 것이라고,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귀여운 강아지는 꾹이, 저희가 이름 붙여줬죠.
이런 눈빛을 어떻게 버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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