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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비글시점
by 효니 Jul 30. 2018

털을 밀었다

단모종도 털은 빠집디다

그대 이름은 개털개털개털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모 치와와'라는 견종이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개알못이었으므로 강아지 이름에 왜 장모가 붙은 건지 갸우뚱 했더랬다.


시간이 지나 내가 반려인이 되고서 털이 긴 견종을 장모종, 털이 짧은 견종을 단모종이라고 칭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샴푸 CF처럼 찰랑찰랑 긴 털을 자랑하...지 않는 비글은 단모종.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려견 털과의 전쟁은 실은 털 길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짧아서 괜찮을 줄 알았지?

털과의 전쟁을 시작하지


꾹이와 함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레깅스와 같이 조직이 쫀쫀한 옷만 입으면 피부가 가려운 것이었다. 범인은 옷에 박힌 꾹이의 짧은 털. 1cm도 안 되는 짧은 털이 옷에 박혀 피부를 콕콕 찔렀던 건데 문제는 그 털이 옷과 같은 색일 경우 찾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꾹이는 점박이다. 고로 털은 3색...)


또 이따금 털갈이 시기가 돌아오는 데 그때는 꾹이가 몸을 털기만 해도 털이 눈에 보일 정도로 우수수 떨어진다. 녀석은 제 몸에서 털을 '뿜고 있다'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앉고 내 침대 위에서 몸을 부르르 떨곤 한다. 아!


착한 사람 눈에만 보입니다, 소파 위의 개털



털뿜뿜 TF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매일 청소기를 수 번 돌리고 그래도 부족해 소형 청소기를 사서 또 돌리고, 털이 박힌 옷을 탈탈 터는 것 만으로는 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미용을 결심했다. 그리고 반려견 무게로 가격이 측청된다는 지식인느님의 답변을 보고 빨리 포기했다. 꾹이는 15키로니깐.

(일부 털관리가 어려운 견종은 샵에 가서 받아야만 된다고 들었어요!)


돈을 쓰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반려견용 빗을 샀다. 털을 빗어줄 때마다 살짝 솎아주는 빗이었다. 그렇게 빗기만 해도 털이 한 주먹은 나왔다. 그러나 털을 솎는 건 임시방편일 뿐 꾹이가 뿜어내는 털을 모두 잡아주진 못했다.

그래서 또 돈을 썼다.
면도기를 샀다.



면도기는 처음이라


평생 전동면도기는 써 본 적이 없던 터라 날이 달린 이 '위협적인' 도구를 놓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조심히 전원을 켰는데 윙- 소리에 다시 깜짝 놀라 전원을 끄고 망설이기를 몇 번, 꾹이를 욕실로 불렀다.


이른바 셀프미용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게 손에 익기 전까지는 보통 일이 아니다.

1. 면도기가 무섭다. 반려견 살에 닿으면 왠지 살이 잘려나갈 것만 같아 처음에는 제대로 밀지도 못한다.

2. 털이 엄청 날린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나는 첫 날 눈물콧물을 쏙 뺀 뒤로는 마스크를 쓴다.

3. 마지막으로 꾹이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르고 달래다가 진을 다 뺀다... (간식 한 봉다리를 다 준 적도 있다!)


그렇게 몇 차례 털을 밀고서야 꾹이도 편하고 나도 덜 힘들게 1시간 내로 털을 미는 법을 터득했다!


비글이 가고 도비가 왔어요?

자존심이 -1 하락하였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숙식제공은 물론, 매일 밤 개님 기분 좋아지라고 산책에 애교까지 부리는 데(!) 실내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처음 셀프 미용을 한 날 미안하게도 꾹이는 삐졌다. 정말 삐졌다. 민숭민숭한 제 몸뚱이가 어색한 지 이불 속에 콕 박혀 몇 번을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꾹이를 달래기 위해서 그날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꾹이 예쁘다'를 100번은 더 외운 듯 하다.


째려보냐?


겨울은 추우니깐 털을 밀지 않고, 본격 털갈이가 시작되는 봄부터 1~2개월 마다 한 번씩 털을 민다. 이번 여름은 개에게나 사람에게나 너무도 더워서 어제도 털을 밀었다. 이제 삐지지는 않지만 털을 밀 때마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 혹 꾹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넌, 털 밀어도 예뻐!



잘생겼다! 우리 꾹이!!



*참고*

여름철에는 털을 너무 바짝 미는 게 좋지 않다고 합니다. 털을 짧게 밀면 자외선의 자극을 강하게 받아 열사병이나 화상의 위험이 있다고 해요. 꾹이는 밤산책을 나가기 때문에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인데ㅠ 여러분은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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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 꾹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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