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휠>
주자는 트랙을 똑바로 달려나갔다. 주자에게 트랙은 직선 그 자체다. 하얀 라인을 따라 곧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규칙이고 트랙 위에 선 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평생을 걸쳐 달린 끝에 도착점에 다다랐을 때, 그제서야 주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트랙은 사실 직선이 아닌 곡선이었음을. 자신이 다다른 곳이 사실은 다른 시작점에 불과함을.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 날 수 없는 인생과 인간성의 굴레. 영화 <원더 휠>이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 역시 그런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순환과 반복의 이미지를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계속해서 불을 지르는 아이, 반복되는 코니 아일랜드 테마 음악... 그 중에서도 엇갈린 사랑-좋게 말해 그렇지 사실상 바람이지만-이 특히 그렇다.
제자리 걸음, 이라는 말 만큼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번 다른 누군가, 다른 경험, 다른 삶을 마주하기를 고대한다. 실제로 그러한 기대 속에서 꿈같은 시간을 지나기도 한다. 하지만 종래에는-이를테면 대단원의 순간에서-실은 그것들 역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이제 이쯤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달리질 게 없다면, 그러면 인간은? 인간은 그저 꼭두각시처럼 그저 운명을 따라 내내 좌절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은 반복된다, 라는 메시지에 감추어져 있는 <원더 휠>의 진짜 메시지는 따로 있다. 당신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삶은 반드시 계속 된다는 것.
운명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트랙이 둥근 모양이든 직선 활주로든, 끝까지 돌아본 사람만이 그 모양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의 삶이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실은 달라진게 있다는 얘기다. 당신의 운명, 당신 트랙의 모양을 알아냈지 않은가.
당신이 생의 어느 지점에서, 허상함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때가 온다면 망한 것 같고, 죽을 것만 같고, 끝장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역시 당신의 삶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될 거라는 데 있다.
당신의 삶을 사랑하세요, 이런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바보 같은 순간도, 제자리 걸음인 것만 같은 것도 전부 운명의 모양을 밝혀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원더 휠>을 보면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 <그 후>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우디 앨런과 홍상수 감독의 행보를 생각해 볼 때, 두 감독이 이런 작품을 내놓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언젠가 그들이 마주할 끝을 마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