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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snghwn Apr 14. 2021

운명과 삶, 불륜과 반복의 이론

영화 <원더 휠>

주자는 트랙을 똑바로 달려나갔다. 주자에게 트랙은 직선 그 자체다. 하얀 라인을 따라 곧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규칙이고 트랙 위에 선 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평생을 걸쳐 달린 끝에 도착점에 다다랐을 때, 그제서야 주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트랙은 사실 직선이 아닌 곡선이었음을. 자신이 다다른 곳이 사실은 다른 시작점에 불과함을.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 날 수 없는 인생과 인간성의 굴레. 영화 <원더 휠>이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 역시 그런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순환과 반복의 이미지를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계속해서 불을 지르는 아이, 반복되는 코니 아일랜드 테마 음악... 그 중에서도 엇갈린 사랑-좋게 말해 그렇지 사실상 바람이지만-이 특히 그렇다.

<원더 휠> 속의 회전목마와 관람차. 역시 반복과 순환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제자리 걸음, 이라는  만큼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번 다른 누군가, 다른 경험, 다른 삶을 마주하기를 고대한다. 실제로 그러한 기대 속에서 꿈같은 시간을 지나기도 한다. 하지만 종래에는-이를테면 대단원의 순간에서-실은 그것들 역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이제 이쯤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달리질 게 없다면, 그러면 인간은? 인간은 그저 꼭두각시처럼 그저 운명을 따라 내내 좌절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은 반복된다, 라는 메시지에 감추어져 있는 <원더 휠>의 진짜 메시지는 따로 있다. 당신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삶은 반드시 계속 된다는 것.

운명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트랙이 둥근 모양이든 직선 활주로든, 끝까지 돌아본 사람만이 그 모양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의 삶이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실은 달라진게 있다는 얘기다. 당신의 운명, 당신 트랙의 모양을 알아냈지 않은가.

당신이 생의 어느 지점에서, 허상함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때가 온다면 망한 것 같고, 죽을 것만 같고, 끝장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역시 당신의 삶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될 거라는 데 있다.

당신의 삶을 사랑하세요, 이런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바보 같은 순간도, 제자리 걸음인 것만 같은 것도 전부 운명의 모양을 밝혀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원더 휠>을 보면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 <그 후>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우디 앨런과 홍상수 감독의 행보를 생각해 볼 때, 두 감독이 이런 작품을 내놓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언젠가 그들이 마주할 끝을 마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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