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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May 01. 2017

카페 이야기

두 번째 카페 

  


 우리가 사는 이야기들도 바다처럼 뜻대로 흘러가지지 않는다. 비바람을 겪고 나면 잔잔한 바다의 소중함을 더 크게 깨닫고, 또 다시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를 마주보고 서면 금새 눈을 감게 된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지금 이 햇살을 피부 속 깊이 잘 담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망원동네 풍경 _ 2016. 종이위 수채

 

  누구에게나 길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일들과 마주치게 된다. 내겐 카페가 그랬고, 또 두 번째 카페를 하리라곤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친구와 운영하던 첫번째 카페를 좋은 분에게 통째로 넘기고는 다시 공사에 들어갔다. 

자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 힘으로 남은 학자금 빚을 모두 갚아버리고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두 번째 하다 보니 나름 요령이 생겼지만 역시 몸으로 모든 것을 때워야 하는 사정에 친구들이 또다시 동원되었다. 함께 벽지를 뜯고, 바닥을 걷어내고 페인트 칠을 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쓸만한 테이블이며 의자, 나무, 소품 등을 주워왔다.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인데 우리 눈엔 괜찮은 것들이 많았다.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바둑판은 분리하여 벽에 거니 그럴듯한 빈티지 선반이 되었고, 한 친구가 주워온 촌스러운 마론 인형을 그 위에 올려놓으니 제법 볼 만했다. 

누군가 버려 놓은, 아이가 그린듯한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선반이 눈에 띄어 주워와 걸어 놓았는데 나중에 어떤 손님이 와서 자기 조카가 그린 거라며 신기해했다.

간판도 전에 있던 부동산 간판 위에 페인트 칠을 하고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두 번째 카페, 망원동과 합정동 골목골목을 누비며 데려온 아이들로 꾸민 이 공간은 친구네 집 거실과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비싸지 않은 커피를 마시며 그림도 그리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여름에는 직접 끓인 팥을 올린 팥빙수도 팔고, 리코타 치즈도 직접 만들어 팔고, 부채에 그림도 그려 팔고, 뜨개질로 작은 소품이며 파우치 도 만들어 팔았다. 

날씨 좋은 계절이 오면 우리끼리 벼룩시장을 열어 안 쓰고 잠들어 있는 물건들을 팔기도 했다. 

벽에는 친구들 그림을 돌아가며 걸었다. 


 

잔잔한 바다는 때때로 비바람을 몰고 온다. 

그렇게 평화롭게 운영되던 카페가 건축주의 통보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생겼다. 

재건축을 해야 하니 나가 달라는 통보. 두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남의 일로만 여겼던 일이 언젠가 나의 일로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합의금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는 건축 주 와의 싸움이 몇 개월 간 계속됐다. 

불과 며칠 전에 이런 일들이 적힌 뉴스를 읽지 않았던가. 

사실 뉴스까지 보지 않아도 이런 일들을 주위에서 종종 들어왔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동네 골목에 돈 없는 예술가, 혹은 창의적인 자영업자들이 들어서고 그 거리는 활기를 띄기 시작하며 결국 건물주로부터 월세 인상 및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 (망원동 근방은 몇년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실이 많아지고 있었다.)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게 자리를 잘 알아보는 요령 같은건 사실 없다. 

있다면 누가 얼마나 더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얼마나 발 품 을 많이 파는가 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고 그때쯤 다행히 건물주와 어느 정도 합의를 했다. 

몇 달 동안 마음고생을 했더니 몇 년은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게다가  최근 사 년 동안 가게 공사를 세 번이나 하다니.. 하여간 너무 인상적인 나날들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야기들도 바다처럼 뜻대로 흘러가지지 않는다. 

비바람을 겪고 나면 잔잔한 바다의 소중함을 더 크게 깨닫고, 또 다시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를 마주보고 서면 금새 눈을 감게 된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지금 이 햇살을 피부 속 깊이 잘 담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두번째 카페 '사이'







                                                                                                                                                          

전소영_sowha

그림그리는 사람.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BLOG / iris567.blog.me

I N S TAGRAM / @artist_so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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