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찍는 첫 사진
‘만삭 사진’은 만삭일 때 찍지 않는다. 주로 28~32주, 인간의 임신 기간 40주 중 배는 적당히 나오되 배꼽까지 뿅 튀어나올 정도는 아니고, 만삭 시기의 어마어마한 부종(과 살찜)이 아직 완전히 덮치기 전이며, 아직은 숨을 헐떡이지 않고도 서 있을 수 있는 때 찍는다. 진짜 만삭 때의 배 크기는 사진으로 담으면 다소 안쓰럽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온라인 청첩장에 넣는 웨딩사진도 결혼식 전에 찍는다. 정작 결혼식 때의 사진은 따로 또 찍고. 웨딩사진과의 공통점은 또 있다. 둘 다 비싸다. 몇십만 원을 빵빵한 배를 촬영하는 데 쓰느니 나중에 아기 물건 하나 더 사주고 말지.
아니, 사진은 찍을 거예요. 셀프로.
작고 작은 나를 닮았는지 아기도 작은 편이라 했다. 자연히 배 크기도 작다. 커다란 원피스를 풀럭풀럭 입고 나가면 오랜만인 이들이 내 얼굴 한 번, 배를 한 번 보고는 “임신한 줄 모르겠다”, “표도 안 난다”는 멘트를 던졌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32주를 그렇게 넘겼다. 상관없지, 뭐. 어디 예약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던 것이 33주가 되자 누가 마법 가루라도 뿌린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길을 걷고 있으면 내 배를 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분명히 셀프서비스 매장인데 점원이 쟁반을 테이블까지 들어주시고, 버스에 타니 한참 후에 날 발견한 아주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시장에서 떡을 샀더니 아기가 먹고 싶어 하냐고 물으셨다. 옳지. 한 눈에도 '절찬리 임신 중'으로 보인다는 말이렷다. 이제 찍으러 가도 되겠구나. 옷장을 뒤적거려 몸에 딱 붙는 스판 원피스를 찾았다.
화장대 서랍 속에서 코로나 이후 고대 유물이 되어 버린 색조화장품을 꺼내서 발랐다. 이제는 트라이아스기 화석에 가까운 굽 높은 구두도 신었다. 여름 원피스 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신랑도 바지를 급히 갈아입고 따라 나왔다.
목적지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무인 셀프 사진관이었다. ‘셀프 사진관’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우수수 생긴 즉석사진관 시리즈 중 하나다. 세 대의 기계가 있었다. 두 대는 반신, 한 대는 전신사진을 찍는 기계다. 전신사진용 기계 앞에 ‘국내 유일 5천 원 풀-바디 전신 스튜디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둥글고 퉁퉁한 배가 사진에 나와야 하므로 풀-바디 전신 스튜디오로 하자. 사진관에 비치된 조화 꽃다발을 들었다. 내친김에 번쩍이는 공주 머리띠도 하나 골라 꼈다.
커다란 한 컷과 네 컷 사진 중 프레임을 선택할 수 있었다. 네 컷 짜리를 선택했다. 관대하게도 여섯 장이나 찍어 준다고 기계가 통보해 왔다. 20초마다 한 장씩, 여섯 장면을 찍는 시간이 촉박하고도 지겨웠다. 포즈를 고민하여 자세를 바꿀 시간은 없는데 120초는 당최 끝나질 않어. 이 분 동안 뚝딱인 후에 여섯 장의 B컷 중에서 B+컷을 겨우 골라 네 컷 사진을 두 장 출력했다. 아래쪽에 인쇄된 QR코드를 찍어보니 찰칵 소리가 나기 전 둘이 우왕좌왕 대환장 판을 벌이고 있는 동영상까지 고스란히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이거면 됐다. 값비싼 추억이 더 귀한 것도 아니고, 눈치 안 보고 우리끼리 재미있었고. 미끈한 A컷이 아니더라도 엄벙덤벙 B컷의 순간들도 아끼며 지내보자. 어차피 사는 건, 게다가 초보 부모로 사는 건 온종일 대환장 타임일 텐데, 엉망인 시간들도 스스로 살뜰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