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9주 차. 공감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by 시애

“의사가 보더니, 나는 그럴 무게가 아니라고 했는데, 애를 안고 다니니 어쩔 수 없더라고.”

언젠가 뒤꿈치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던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때는 단순히 몸무게만으로도 발에 문제가 생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들었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주위에 엄마가 된 이들이 늘어나고 듣는 경험담도 늘어갔다. 아기가 설핏 잠든 동안 눈은 아기에게 고정한 채 아무 반찬에나 밥을 비벼 한 끼 해치우고, 화장실 문도 못 닫고 볼일을 보다가 ‘현타’가 왔다는 건 공통된 증언. 그 외에도 아기를 안다가 디스크가 터져 허리 수술을 하기도 하고, 손목이 나가고, 날마다 손발이 퉁퉁 붓고, 출산보다 더 아프다는 젖몸살에, 젊은 나이에 요실금까지. 종일 집에 갇혀서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리다 인간이 아니라 젖소가 된 것 같아 우울증이 왔다는 이야기는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거기에 모유 수유 중이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한정되어 있고, 각종 호르몬은 널뛰고, 온종일 말을 섞을 사람은 갓난아기밖에 없는데, 남편 퇴근 시간마저 한밤중이라면. 그런 하루들이 매일 이어진다면.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귀로만 들었던 과거의 이야기들을 이제야 온몸으로 느낀다. 정말 그랬겠구나. 지금 내 몸조차 내 맘 같지 않은데, 아기를 낳고 삐걱거리는 몸으로 어리고 여린 생명체를 책임져야 한다면 나의 안녕은 점점 뒤로 미뤄지겠구나. 당장 저번 주부터 발톱 깎기가 조금 버거웠다. 부풀어 오른 배가 중간에 턱 걸렸다. 양말을 신거나 운동화 끈 묶기도 불편하다. 손으로 거품을 내어 문지르는 대신 스프레이 형태로 뿌리는 발 세척제를 사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치나 갈비뼈 부근을 차야 할 때가 왔는데 아기가 아직 아랫배를 차는 게 더 걱정이다. 내 발보다.



대신 뜬금없이 스모 선수들이 안쓰러워졌다. 대체 당신들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신 겁니까. 송아지가 마실 우유를 어미 소에게서 뺏는 것도, 핏덩이들을 어미에게서 떼어 애견숍 투명한 칸에 넣어두는 것도 어찌나 미안한지. 세월호나 이태원 사건으로 여전히 싸우고 계시는 부모님들의 절망도 더 구체적으로 마음 아프다. 난치병으로 내내 병원학교에 다니던 우리 반 아이의 부모님은 어찌 버티셨을까. 성폭행을 당해 원치도 않는 사람의 아이를 가져야 했던 여성의 고통도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공개 방송에서 방청객으로 모았을 때 가장 공감을 잘해주고 호응을 잘하는 게 ‘애 엄마’라는 말을 오래전에 들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겠다. 태동과 함께 잠들고 깨어나다 보니, 누군가의 엄마이자 자식일 게 분명한 어느 누구의 삶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나는 지금 세상의 엄마들을, 학교에서 만나던 학부모님들을 조금씩 이해하는 중이다.






동시에 1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대선배님들이 난리법석 중에도 아이들에게 허허 웃어주실 수 있었던 이유도 절절히 알겠다. 아직 낳지도 않은 나조차 길에서 아이를 보면 그 아이와 양육자가 겪어내야 했을 시간이 예상되는데, 직접 육아를 경험한 분들이 1학년을 보시면 아이가 지나온 시간이 좌르륵 보이시겠지. 아빠이고 엄마셨던 선생님들은 교사 지도서에 적혀 있는 아동 발달 과정과 수행 목표 대신 영아와 유아 시절을 거친 어린이로서의 기특한 성장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지 않으셨을까. 초보 학부모의 초조함과 걱정과 기대를 한 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가슴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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