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화 1. 대답 좀 해줄래?

- 저녁 메뉴 고르는 게 제일 힘들다.

by 코알라

오늘 뭐 먹지?

몇 가지 후보의 메뉴들을 생각해 내는 건 나의 몫.

후보 중 최종 하나를 고르는 건 너의 몫.


이번엔 네가 생각해 보라며 떠밀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결국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잖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진다.


"먹고 싶은 몇 가지 메뉴를 말해주면 내가 그중에 고를게."

"...."

"응? 엉? 말을 해 봐!"

"생각 안 나, 네가 말해 봐."


"치킨? 찜닭?"

"...."

"김치찌개? 된장찌개?"

"...."

"족발?"

"...."

"돈가스?"

"그건 네가 좋아하는 거지."


"김치볶음밥 해 먹을까?"

"...."

"김 구워서 달래장에 슥슥?"

"...."

"그냥 스팸이랑 양파랑 청양고추 넣어서 볶을까?"

"...."


계속 이어지는 수요 없는 공급에,

혹시... J 씨가 소리 소문 없이 죽어버린 것인지 생사확인을 위해 고개를 돌려본다.

살아있다. 살아서 입술을 꼭 다문 채 휴대폰만 보고 있다.


"대답 안 해? 죽을래?"

"돈가스 먹자."

"오빠는 돈가스 싫다며?"

"...."

"싫다며?"

"...."

"먹고 싶은 거 없어?"

"...."


순간의 싸함을 알아챌 눈치정도는 있는지

오공본드로 붙인 듯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J 씨의 입술이 움직인다.

"그냥 돈가스 먹을 게, 널 위해. 난 착하니까."


똥집 같은 J 씨의 입술에서 겨우 전해 들은 단비 같은 한마디는,

후련하다기보다 왠지 화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기는 먹는데, 마음은 찜찜하다.


"있잖아... 대답 좀 빨리 해주면 안 돼? 속 뒤집어질 것 같아."

"나는 너와 달라서 신중하잖아. 신중히 고르느라 그래, 재촉하지 마."

아구창을 날리고 싶다.


요즘 우리의 대화,

왜인지 모르게 통쾌해하는 너,

대화만 시작하면 울화가 치미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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