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화나도 헤어지잔 말은 하는 거 아니라던 그가 헤어지자 했다.
"와이프 39살 생일에 명품 가방 사줬더니 엄청 좋아하더라고. 마지막 30대 생일에 돈 좀 썼지!"
30대가 별 거냐며 20대의 마지막 생일도 평범하게 보낸 나인데, 몇 년 전 회식에서 차장님이 자랑하듯 내뱉은 말이 39살이 되니 자꾸 생각났다.
30대의 마지막 생일에 점점 의미를 부여하며, 결국엔 J 씨에게 무리한 요구까지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30대의 마지막인 올해 생일은 정말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
뭐가 갖고 싶다, 어딜 가고 싶다도 아니고... 행복하게 라니...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정말 황당 그 자체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요구사항에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그러자."라고 하는 J 씨의 대답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 버렸다.
J 씨를 만나고 나만의 몇 가지 소확행들이 이제는 '우리의 소확행'이 되었다.
너무나 사소한 일상을 함께 했을 뿐인데 서로에게 습관이 되고, 추억이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혼자 평소에 즐겨 듣던 폴킴의 노래들이 이제는 우리의 주제가가 되었고,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제는 그와 걸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게 되었고,
혼자 하는 쇼핑에 익숙한 나였지만 이제는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골라주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
나의 39살 생일선물로 그는 '우리의 소확행'을 선물했다.
소소한 행복이 겹겹이 쌓이니 절대 소소하지 않았다. 거대했고 더 확실했다.
웬만해선 연차를 쓰지 않는 J 씨가 내 생일에 맞춰 연차를 썼다.
그리고 갖고 싶었지만 비싼 가격에 사기를 망설였던 반지를 이번에 아니면 다시없을 기회라며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반지 낀 내 손을 볼 때마다 너무 황홀해 미춰버릴 것 같았고, 그런 내 손을 보는 그의 두 눈은 웃펐다.
평소 가고 싶었던 청도 운문사로 향했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바라보며 이야기하며 사진을 찍었다.
산꼭대기에 있다는 사리암도 가보고 싶어졌다. 비록 가는 내내 다리 아프다며 투덜대긴 했지만 2시간의 등산도 나와 함께 해 주었다.
그리고 저녁, 미리 예매해둔 폴킴 콘서트를 보기 위해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평소에 즐겨 듣던 우리의 노래를 직접 함께 들으니 행복이 벅차올랐다.
나만큼 벅차하는 그를 보니 내 행복은 몇 배로 늘어났다.
언제, 어느 순간 꺼내보아도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랑받은 최고의 날'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12월이 되었다.
내년부터 '세는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 도입 적용한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J 씨라 뉴스가 끝나자마자 내가 물었다.
"내년부터 만 나이 도입하면, 나 내년에도 39살인데... 그럼 내년이 정말 30대의 마지막 생일이 되는 건가? 내년 생일도 이만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훅 들어온 내 말에 너무 놀라 표정관리도 하지 못한 J 씨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는 수습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운전만 했다. 괜히 머쓱해졌다.
그... 정도로 힘들었니?
P.S 이 자리를 빌려 J 씨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글을 J 씨에게 헌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