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인스타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 쿨하지 못한 나, 그러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그녀.

by 코알라

작가 소개란에 나 스스로를 '불혹의 캥거루족'이라 소개했지만, 사실 나는 올해 39세이다.

39세이든 40세이든 큰 차이 없는 것 아니냐며 가볍게 넘길 수도, 앞자리가 숫자 3인 것과 숫자 4인 것은 하늘과 땅만큼 아주 큰 차이인데 왜 미리 나이를 먹고 들어가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리 나이를 먹고 들어갔다기보다 올해를 '마흔의 전야제' 같은 느낌으로 멋진 마흔을 맞이하기 위한, 나를 다듬으며 준비하는 한 해로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불혹의 캥거루족'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마흔을 맞이할 날 위해 세운 계획들 중 가장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은 10년 넘게 계를 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총 4명의 친구들로 구성된 소모임이지만, 너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서로에겐 서로임이 틀림없을 작지만 강한 '팀'이다.


한 명을 제외한 우리 3명은 모두 대구에 살고 있어서 내가 퇴사한 이후 종종 셋이서 만남을 가졌었고, 20대의 마지막을 잠옷까지 맞춰 입고 부산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다 함께 보냈던 것처럼 30대의 마지막도 우리 넷이서 멋있게 함께 마무리해보자 제안했다.

친구들은 나의 제안에 들떠하며 일정을 조율해 나갔고, 20대 미혼인 시절과 달리 가정이 생긴 그녀들과 '가능한 일자'를 찾는 것이 꽤 힘든 일이었다.


겨우 11월 첫째 주와 12월 셋째 주 주말이 우리 셋은 일단 일정이 맞았고, 이 이야기를 정리해 총무인 내가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함께 있는 우리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혹시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와의 일정이 맞지 않는다면, 그냥 내년에 마흔이 된 기념으로 호캉스를 가보자는 차선책까지 미리 준비한 상태였다.


놀러 갈 생각에 들떴던 우리들의 마음이 가라앉는 데엔 하루 채 걸리지 않았다.




바쁜 일이 있는지, 오전 11시쯤 보낸 톡을 오후 3시쯤 읽은 타 지역 친구가,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말만 보내고 일정을 공유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단톡방은 조용했다.

저녁쯤 되어 연말 분위기가 나려면 12월에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니 12월 셋째 주 시간이 되는지 다시 물었다.

11월에 가면 안 되냐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럼 11월엔 언제 시간이 되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말이 없었다. 그래서 12월 셋째 주에 시간 빼는 것이 힘들다면, 놀러 갈 수 있는 다른 날이 있는지 내가 다시 물었다.

그게 아니라, 12월엔 추워질 텐데 혹시 애들이 감기 걸릴까 봐, 자리를 비우지 못할 거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걸리지도 않은 감기를 벌써부터 걱정하는 것도, 기껏해야 토요일 오후에 갔다가 일요일 조식 먹고 헤어질 여행인데 게다가 바로 옆에 시부모님도 살고 계시고 남편 혼자 하루정도 케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애도 없는 내가 묻기엔 다소 껄끄럽다 느껴졌다.

(참고로 그녀는 7살과 6살의 두 딸이 있다.)


"감기는 추울 때만 걸리는 것도 아니고, 사계절 내내 언제든 걸릴 수 있는 거 아냐? 무슨 걸리지도 않는 감기를 10월 초부터 걱정하면서 여행을 못 간다는 게 말이 돼?"

애엄마인 친구들이 당황해하며 버럭 했다. 속이 시원하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우리 셋은 그녀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끝내 그녀는 11월 언제 본인이 시간이 되는진 끝까지 얘기해주지 않았다.

내년에 마흔이 되어 그럼 호캉스를 가자는 우리의 차선책을 제안했지만, 그것도 일정을 공유해주지 않았다.




꽤 모인 곗돈에서 호캉스 여행경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시작한 계였으니.

가능한 여행일자를 알려주지 않던 그녀는, 여행을 가지 않을 거라면 모인 곗돈을 나누자 했다. 아무도 여행을 가지 말자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발언을 하는 친구가 어이없었지만, 그것보다 왜 돈을 굳이 나누자고 하는지 그 이유가 더 황당했다.


- 다음 주가 신랑 생일인데, 신랑이 갖고 싶어 하는 게 비싸서...

나 돈이 없거든. 우리 곗돈 나누면 딱 그 금액이 될 거 같아.


'그래, 곗돈으로 네 남편 좋은 거 사줘라 이년아.'

우리는 그렇게 황당한 이유로 서로 마음 상한 채, 곗돈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집념에 '주고 치우자'는 마음으로 그간 모은 곗돈을 나눴다.


아쉬움이 컸기에 며칠 뒤 여행을 가지 못한다면 호텔 뷔페라도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우리 넷 모두 가능한 일자로 메리어트 호텔 런치 뷔페를 예약했다. 선결제하면 10% 할인이라 예약과 동시에 선결제도 해두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당일날 아침, 그 타 지역 친구는 일이 많아 못 갈 것 같다며 요즘 일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고 여유가 없다며 이해해 달라는 톡을 보내왔다.

이 쯤되면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닌가 싶어 한마디 하려는데 그녀의 톡이 이어졌다.

- 사실... 조리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지난주에 죽었어. 너무 정신없고 마음이 아파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혀... 그래서 일이 많이 밀렸어. 미안하다 얘들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겠는가? 친한 친구를 떠나보낸 사람에게 이런 일로 날카롭게 쏘아대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생각했다.

당일 부분 취소는 되지 않기에 1인당 7만 3천 원 런치 뷔페를 1인당 9만 3천 원을 주고 먹고 온 격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라도 화려한 호텔 런치 뷔페로 우리의 39세를 마무리하며, 내년엔 좋은 일만 있으라 서로를 응원하고 축복해주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녀에게 금이 가버린 내 마음은 그녀의 인스타를 볼 때마다 금이 번졌고, 결국엔 깨져버렸다.




호텔 런치 뷔페 약속이 있던 그 주 토요일, 동갑내기 동네 친구들과 30대의 마지막을 잘 보내기 위해 1박 2일로 펜션에 놀러 왔다는 그녀의 인스타 사진이 올라왔다.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다음 주 친구들과 근교 카페에 놀러 왔다는 사진과 가족들끼리 경주에 놀러 왔다는 사진도 인스타에 올라왔다. 바쁜데 잘 놀러 다니네 라며 혼자 비아냥댔다.

11월 마지막 날 피아노인지 바이올린인지 아무튼 콘서트를 다녀왔다는 인스타 사진이 올라왔다. 호캉스라는 원대한 계획이 무산된 우리의 마음과 무관하게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그녀가 미워졌다.

대망의 12월 오늘, 가족들과 거제도에 놀러 왔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인스타에 올라왔다.

감기에 걸릴 걱정은 하면서 바닷바람은 잘 쐬고 있구나. 라며 내 마음에서 그녀를 지웠다.


참다 참다 화가 치밀어 아무래도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불같은 성격의 나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나도 너무 속상해서 따지고 싶어. 근데 그럼 싸움될 것 아냐. 있잖아... 이 나이 되어서까지 친구랑 싸워야 하는 게 너무 슬퍼, 우리 그러지 말자."

그 친구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하고 싶은 말을 해야 뒤탈 없는 성격인 나지만, 참기로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무례했다. 끝까지 모두 함께 하고 싶어 한 우리의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중요한 관계로 생각지 않았다.



나의 최고의 복수는 나의 에너지를 그녀에게 쓰지 않는 것이다.


완성.png 본전 뽑아야 된다는 강박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서민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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