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부턴 대학가에서 밥 먹지 말자.

-아니다. 가끔은 와보자.

by 코알라

'대창 먹고 싶어.'

TV를 보다 대창이 먹고 싶어진 금요일 오후였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대창으로 하겠다고 J에게 통보한 뒤 가까운 거리의 식당을 몇 곳을 검색하여 찾아냈지만, 대부분 교통체증이 심한 금요일 저녁에 대창 하나 바라보고 가기엔 40분~1시간은 족히 가야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평소에 대기시간도 꽤 길다는 리뷰가 있는 맛집들이었다.

한참을 검색하다 집 근처 대학가에 소고기로 유명한 맛집에서 대창을 먹고 왔다는 블로그 후기를 J가 발견했고,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와 차가 막히는 것을 싫어하는 J의 의견을 종합하여 이번 주 금요일은 대학가에서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대학가 원룸촌 근처에 있는 식당이다 보니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유료주차장도 이미 꽉 차 있었고, 골목골목 주차할 곳을 찾느라 몇 바퀴를 돌았는지 슬슬 포기하고 싶어 지던 찰나 주차할 곳을 발견했다.

시간은 저녁 6시 45분, 기쁜 마음으로 들어간 식당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쎄한데?"

"아냐, 우리가 일찍 온 걸 거야."

밀려오는 의심들을 가라앉히고 메뉴판 구경하는데, 블로그에서 봤던 메뉴판의 메뉴들과 아예 달라져 있었다.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기에 대충 메뉴판을 훑은 뒤, 대창 3인분과 대창 볶음밥, 쫄면 그리고 나의 단짝 진로를 주문했다.


이전 회사의 유일한 장점은 회식 메뉴에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가격도 따지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회사 분위기 덕에 나는 처음으로 소대창과 특양을 맛보았었고, 돼지곱창이나 막창과는 다른 그 고급진 기름 맛에 흠뻑 빠져서 몇 년 동안 '대창'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었다.


"이게... 왜 이래?"

기름기 좔좔 흐르는 통통한 대창을 상상했는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냉동된 채 서로 엉켜있는 적은 양의 대창이었다. 나는 냉동된 대창을 이 날 처음 보았다.

메뉴판을 다시 집어 들어보니 '1인분 8천 원'이라는 가격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가격을 먼저 확인하고 주문했어야 했는데, 냉동이라 8천 원이었나 봐..."

"먹어보자! 맛있을 수도 있잖아."

나보다 음식에 진심인 J의 얼굴은 이미 실망이 가득했고, 나는 그런 J를 다독여 다시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생각했던 것과 다른 비주얼에 실망한 J는 한두 입 하다 대창을 먹지 않았고, 들어온 지 10분 만에 2차를 제안했다.


"제가 블로그에서 보고 왔던 메뉴판에는 대창도 있고 특양도 있었는데, 오늘 주신 메뉴판에는 특양이 없더라고요. 혹시 가게 사장님이 바뀌셨나요?"

"아... 아니요. 올해 초에 가게 리뉴얼되어서 메뉴가 바뀌었어요."

30분 만에 식사를 마친 뒤 계산을 하면서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메뉴가 리뉴얼되었다고 했다. 대창은 대학가에서 인기 메뉴가 아니었던지 차돌박이, 냉삼겹살 등과 같은 메뉴들을 메인으로 새로이 구성했는 듯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은 알지만, 왠지 우리의 불타는 금요일이 망쳐진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은 채 식당을 나왔고,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J와 함께 2차로 간 술집에서 J는 새우 감바스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한 것도 없이 지쳐버린 우리는 대화가 넘쳐나는 술집 안에서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배만 채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2차로 갔던 술집(좌)과 팡팡 두들기며 놀았던 게임기(우)


"다음부턴 대학가에서 밥은 먹지 말자."

2차로 갔던 술집을 나오며 우리는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처음 간 식당에서는 괜히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 심통이 났고, 두 번째로 간 술집에서는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싫어져 괜히 심통 난 것이 확실했다.


나이 들었음을 실감하며 산책 겸 걷다 발견한 오락실에서 1,2차로 밥 먹은 시간보다 더 오래 게임을 했다. '팡팡' 버튼을 쳐대니 뭔가 속이 뻥 뚫려버리는 것 같았고, 한참을 서로 말도 안 하고 게임에 집중했다.



'다 때가 있다.'


고등학생 때 시험기간에 잠만 퍼질러 잔다며 나를 혼내던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은, '다 때가 있는 법이고, 지금은 네가 공부할 때이다.'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늘 흘려들었다.

그때의 나도 분명 최선을 다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설령 '과거의 나'의 어느 한 지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보다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낼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고, 또한 '때'라고 하는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내 행동을 제약하고 억압하는 것 같아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은 엄마가 말하는 그 '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곳곳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여러 음색의 밝은 웃음소리들, 점점 커지는 흥이 가득한 목소리들, 쌓이는 술병들 옆에 지친 기색 전혀 없는 앳된 얼굴들... 그 무리에 속해 있었던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에만 발산할 수 있었던 나의 에너지.


'언제 우리가 저랬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지만, 우리에게도 '때'를 놓치지 않고 즐겼었던 지금까지도 추억되고 있는 그 시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반가웠다.

괜한 심통들은 사라지고, 아련함만 남은 불타는 금요일로 바뀌었다.

추억을 소환해준 대학가를 빠져나오며 우린 말을 바꿨다.

"다음에 또 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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