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예요. 푹 쉬어야 낫는 병이죠.

-아프니 마음이 편해졌다.

by 코알라

더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가을밤이었다. 선풍기를 초미풍으로 켜놓고 잔 것이 화근이었는지 목이 따갑고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져 잠에서 깼다.

'감기 걸린 건가? 약 하나 먹고 다시 자야겠다.'

몇 달 전까진 조금만 목이 따가워도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닐까 덜컥 겁부터 났었는데, 이제는 코로나에 대한 긴장이 풀린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종합 감기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새벽엔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진작 들었어야 했는데...'

그 정도의 추위는 아니라며 호기롭게 입방정 떨던 지날 날을 반성하며, 꺼놨던 전기장판을 뜨뜻한 온도에 맞춰 켰다. 그리곤 땀 쭉 빼고 나면 한결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평소보다 늦은 기상 시간인 11시쯤 겨우 눈을 떴다. 약의 효과가 없었던 것인지 여전히 목은 따가웠고 몸 안은 열 기운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들던 한여름 무더운 아침때처럼 몸이 축 처지고, 힘이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나의 혼잣말에 헛웃음이 났다.

"아. 오늘은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구나, 난 아프니까."




출근해야 하는 평일 지금처럼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탈이 나 활동하는데 지장을 주는 컨디션이었을 땐 나의 안위보다는 내 업무들의 안위 걱정에 조급한 마음부터 생겼었다.

정상 컨디션이면 충분히 오늘 안에 할 수 있는, 대신해줄 사람 아무도 없는 나의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부터 앞섰고, 꾸역꾸역 업무 처리를 하면서도 행여 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했었다.


아픈 증상에 따라 골고루 방문했었던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에서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니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각기 다른 의사 선생님들의 공통된 처방을 받아왔다.

이 공통된 처방이 몇 개월 동안 계속되자 판타지 소설의 대사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간혹 아프지 않은 하루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나날들이었다.

내가 돈을 벌러 회사를 가는 것인지 병원에 가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불혹의 캥거루로 엄마의 품 안에 다시 들어온 2~3개월 동안은 여전한 잔병치레들로 꽤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몸 상태가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생각은 줄이고 푹 쉬라 했다.


그렇다고 내 편의만 생각하며 한량처럼 소파에 갇혀 TV만 넋 놓고 보고 있는다거나, 침대에 드러누워 있기만 할 순 없었다. 남들에게 '퍼질러 노는 한량'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가거나 책을 읽고, 아카데미 센터에 인문학, 교양 등의 특강을 들으러 다녔다.

업무를 쳐내듯이 쳐내야 하는 일정을 만들어냈고, 온전히 쉬는 마음을 먹는다는 건 나에겐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남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시간에 무뎌지는 삶을 살 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일상에 '정해진 일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한끗 차이로 '준비생'과 '한량'으로 구분된다 여겼다.


"너 그거 삐끗하면 자격지심이야!"

'남의 시선'이 1순위인 나에게 친구가 한소리 했다.

쓴 맛인 거 같기도 하고 단 맛인 거 같기도 한, 남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들고 싶다가도, 나를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친구의 말에 어떤 말로 받아쳐야 할지 몰라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친구의 말이 일리가 전혀 없지도 않다.

타인이 아닌 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으니.

감기 걸린 것을 이렇게 반기다니 말이다.




오늘 나는 감기에 걸렸다.

약을 먹고 푹 쉬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나을 수 있다.

무리하게 몸을 일으켜 운동을 나가면 안 된다. 병을 더 키우는 일이다.

잘 먹어야 한다. 다이어트한답시고 사과 한 개, 고구마 한 개 먹다가는 면역력이 더 떨어진다.

그저 가만히 감기 낫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저 내 몸부터 챙겨야 한다.

그러니 가지가지하는 그대여, 오늘은 맘 편히 쉬시게.



keyword
이전 15화39살 생일, 내년에 한번 더?